행사명: 브릭코리아 컨벤션 2016 Brickorea Convention 2016
일시: 2016.10.22(토) ~ 10.30(일) | am 10:30 ~ pm 8:00 (마지막날은 6시까지)
장소: 현대백화점 판교점 10층 문화홀
관람료: 무료
'대한민국 최대의 레고 창작전시회', 그 네 번째 막이 올랐습니다. 작년에는 7만명이 다녀갔는데 올해에는 어떨지 모르겠다며 JTBC 뉴스에까지 나왔네요. 저도 첫 주말을 맞아 얼른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레고 동호회 다섯 곳이 합동으로 개최하고 레고 코리아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400점이 넘는 창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네, 이게 다 창작품입니다. 레고 사에서 내놓은 기성제품 그대로를 갖고오면 사전심사에서 탈락하게 되지요. 가격이 수십배 오른 희귀품이든 전종을 달성한 콜렉션이든 상관 없습니다. 기성제품을 그저 적당히 배치해놓는 디오라마도 안됩니다. 뭐라도 어떻게 개조라도 해놓아야만 합니다. 레고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창작품의 세계,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이번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Jeffery 님과 하비인사이드 팀의 '임페리얼 스타 디스트로이어'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임페리얼 스타 디스트로이어입니다. 아예 바깥 홀에 따로 전시가 되어있어요. 2m 가량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바로 옆에서 제작 동영상도 리플레이되고 있는데,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물론 여러 명이서 여러 날에 걸쳐 작업한 것이죠. 이 외에도 공동작업물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 크기는 백화점 홀이다보니 그렇게까지 넓지는 않습니다. 전시작들의 양과 규모에 딱 들어맞는 정도. 가족단위 관객이 주류를 이루지만 아이들 보라고 놔두고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는 아빠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죠.^^ 이제부터는 전시된 순서보다는 작품의 유형별로 묶어서 보여드려볼게요. 우선 대형 디오라마들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홀 중앙을 꽉 채우며 맞아주는 캐슬 디오라마입니다. 뭔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전투가 벌어지는 거겠죠? 이 역시 여럿이서 힘을 합쳐 만들어낸 장관이라고 합니다. 장차 삼국지, 이순신 디오라마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레고 제품으로 만든 것만 출품 가능하다'라는 제한규정 탓에 어려움이 많겠지만요.
△ 베라딘9 님의 '벚꽃엔딩'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골고루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은 이것인 듯했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벚꽃엔딩'이라는 제목으로, 진해 군항제를 소재로 적절히 변형을 하신 듯해요. 3만개가 넘는 브릭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날마다천국 님의 '스토미의 행성탐사기지'
그런가 하면 이처럼 SF 정신으로 중무장한 작품도 있구요. 이것만 하나하나 뜯어보다가도 퇴장시간 되겠네요.
△ 잡부 님의 '여행... 상상 속 일탈'
이렇게 여행사진의 한 장면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위 세 작품의 규모는 비슷합니다. 노련한 레고 창작가들도 이런 거 하나에 몇 달씩을 쏟아붓곤 한다죠.
△ 시현아빠 님의 '판타지 성'
"레고로 만들기 가장 적합한 것은 역시 건물"이라는 것이 정설이죠. 역시 많은 건물들이 등장합니다. 모듈러 빌딩스 제품군 풍의 건물도 많고 유럽식 성채도 빠질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성채는 뒤와 안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전시장에서는 앞면밖에 감상할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 캐빈 님의 '항구도시 디오라마'
한편 '항구도시 디오라마'라는 이 작품은 중동~북아프리카 풍입니다. 이쪽으로 나온 레고 제품이 몇 가지 되지 않는데 부품 조달하랴 구상하랴 애 많이 쓰셨을 듯하네요.
△ 블루하우스 님의 '그때를 아십니까' 시리즈
한국/동양 전통건물로는 이렇다할 작품이 많이 없어 (그래도 구 서울역사와 다보탑은 있습니다) 아쉬웠지만 대신 이처럼 예쁜 연작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왼쪽부터 초가집, 기와집, 적산가옥, 양옥집까지 근현대 한국가옥 변천사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이제부턴 컨셉트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감상해볼까요?
△ 루시의 별 님의 '북유럽의 거리'(위) 및 '고흐의 방', '고흐의 밤의 테라스', '고흐, 밤의 하얀 집'(이상, 아래 왼쪽부터)
위와 아래 모두 한 분이 만드신 겁니다. '북유럽의 거리'라는 제목의 위 작품도 예뻤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속 장면을 2D -> 3D로 재현하다니, 아래의 세 작품은 아이디어가 정말 탁월했습니다.
△ 워니마마 님의 '미피 아파트 시즌 2'
'미피 아파트 시즌 2'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피 잔뜩 모아서 다이소 케이스나 액자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심지어 그걸 겹겹이 쌓아놓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곤충 박제같아보여서요. 차라리 바닥에 굴러다니는 게 낫죠. 그런데 이처럼 멋진 아파트를 만들어주셨네요. 미피의 특성에 맞게 한 집 한 집 꾸미셨어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아 더 좋네요.
△ 서희냥이 님의 '가을나무'
컨셉트만 적절히 잡아준다면 특별히 튀는 주제, 유명한 주인공 없이도 아름다운 작품 하나가 됩니다. 고목나무 참 멋지게 디자인됐네요.
아래부터는 참신하고 인상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품들입니다.
△ 깨복장군 님의 '밀레니엄 팔콘 기타'
밀레니엄 팔콘, 기타로 변신! 그렇군요, 이렇게도 되는 거였군요. 수십 년동안 봐왔으면서 왜 저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요.
△ 규갱파 님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녕여름', '집사의 오후', '모기', '가을걷이'
이 넷 역시 한 분의 작품입니다. 그저 노란색 브릭을 늘어놓는 것만으로 훌륭하게 재현된 가을 논, 실감이 뚝뚝 떨어지는 모기, 인상적입니다.
△ 피망 님의 '위안부 소녀상'
컨셉트, 아이디어 얘기하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빼면 어불성설이죠. 레고와 사회적 메시지 사이의 관계요? 레고란 게 어차피 세상을 베끼는 또 하나의 방식인데 성립 안될 리가 있나요. 작품명은 '위안부 소녀상'입니다. 커스텀 도색이 가해진 경우구요.
△ 퐁팡핑요 님의 '혼자 추는 춤'
그런가 하면 세월호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있습니다. 작품명이 쓸쓸하네요. '혼자 추는 춤'입니다.
분위기 좀 바꿔볼게요. 좀 무겁긴 했죠? 기존의 유명한 대상을 재현한 재현성 위주의 작품들이 되겠습니다. 실제 대상이든 다른 장르든요. 사실은 이쪽으로 많은 로봇들―건담, 트랜스포머, 바이오니클, 오버워치 등등―이 출품되었는데 제 취향이 아닌지라 촬영대상에서 대거 제외되고 말았던 것이죠.
△ 소브 님의 'K2 흑표'
밀리터리 빠질 수 없죠. 한국형 전차 'K2 흑표' 등장합니다. '2016 밀리터리 블록 조립대회' 대상 수상작이에요. 근현대 밀리터리물은 레고 사가 일부러 제품화하지 않기 때문에 창작이 상당히 활발한 분야의 하나입니다. 그런 분야에서 상을 받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일테죠.
뭐 좋은 거라고 나치 땡크 만들어놓고 헐떡거리는 서양 아저씨도 많은 판국에 한국인이 그런 거 좀 갖고논다고 뭐랄 일은 아니겠지요. 대신 기왕이면 한국군을 소재로 할 경우 가산점은 좀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 하은아빠 님의 '우주전함 야마토'(앞), '은하철도 999'(뒤) 및 제로 & 최담백 님의 해당 커스텀 미피들
아니메 역시 빠지면 섭합니다. 앞은 [우주전함 야마토], 뒤는 [은하철도 999]입니다. 개인적으로 '야마토'가 껄끄럽기도 하고(제국주의 일본을 상징하는 이름 아니었던가요...) 999를 훨씬 재미있게 보기도 했기 때문에 포커스가 뒷쪽에 맞아있습니다. 레고 사가 희한하게 안 건드리는 분야 중 하나가 일본 컨텐츠입니다. 그 많은 애니/특촬물이 단 하나도 안 나왔죠. 정작 일본색 강한 닌자고 등등은 열심히 찍어내면서. 생각해보면 유럽 것도 별로 없어요. 유럽 회사면서 정작 컨텐츠는 미국 것만 맨날 우려먹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돈이 안될까요, 과연?
△ 최담백 님의 '로보트 태권 V 전신상'
그러나 저러나 태권 V는 역시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죠. 꽤 큽니다. 높이 85cm. 자, 논란은 잠시 뒤로 하죠. 시간이 지나면 요즘 TV 채널을 점령하고 있는 국산 애니들이 속속들이 레고화되어 자리를 채워줄 거라 믿어요.
△ jrbony 님의 '그리버스 장군의 휠바이크 _ 워터 레이싱 버전'
라이센스물에서 [스타워즈]를 빼면 레고 사는 아마 도산위기에 다시 몰릴 거예요. 대신 하도 제품이 많아 창작가들에겐 지뢰밭이겠네요. 에피소드 3에서 대활약 끝에 장렬하게 가신 그리버스 장군, 그분의 휠 바이크 역시 카리스마를 드높이는 데 한몫 했죠. 레고로 이미 제품화된 게 두 개 있는데 당연히 쪼끄매요. 그런데 이 작품은 거꾸로 30cm가 넘는 액션 피겨 사이즈에 맞춰 휠 바이크를 키웠습니다.*_*
△ 레고맨 님의 '레고 오페라의 유령'
그 밖에도 재현할 만한 대상은 하고많습니다. 이번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구요.
△쩡보흥 님의 '먼저 갈게!'
또 이번엔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한 장면입니다. 애니를 봤다면 웃을 수밖에 없는 작명 센스!
△ SatohMako 님의 'Mirkwood Elves Castle's Underground'
[반지의 제왕]과 [호빗] 또한 빼놓기 아깝죠. 비록 레고 제품으로는 거어대한 디오라마와 무수한 미피들 어느 쪽도 상품성이 없다보니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지만 창작가들에겐 탐스러운 도전과제 중 하나일 겁니다.
작품감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외에도 테크닉 자동차부터 훈민정음에 이르기까지 수백 점의 흥미진진한 창작물들이 빼곡이 전시되어있으니 레고 좋아하시는 분들은 놓치지 말고 꼭 관람하세요. 홀 앞에서는 일부 제품 판매도 하고 있고(가격은 뭐 그냥...) 아이들 놀기 좋게 블럭놀이터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주말의 경우 주차하는 데만 30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은 기억해두셔야 할 것 같아요. 저녁 8시까지니까 가능만 하다면 평일 관람을 추천합니다.
브릭, 하고자만 한다면 얼마든지 예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