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브릭

모듈러를 골라드립니다 - 모듈러 빌딩스 인기투표 결과

apparat 2017. 2. 2. 10:24

레고 커뮤니티들의 문답게시판에서 일과처럼 반복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모듈러 중에서 어떤 게 더 좋아요? / 어떤 걸 먼저 사야 할까요?"

20만원이 넘는 정가(+프리미엄), 높은 평판과 인기, 묘하게 수집욕을 자극하는 요인까지 더해져 결정장애를 호소하는 분이 많은 시리즈가 바로 모듈러 빌딩스죠.


이 대목에서 입문자를 위해 몇 가지 팩트 체크부터 하고 넘어가자면(엑스퍼트께서는 통과해주시면 됩니다);



오늘날 레고의 한 정점에 서있는 시리즈인 만큼 수많은 성인 팬의 사랑을 받고 있고, 드높은 단종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전종을 향해 일로매진 중인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작은 어딘가 한 곳에서 해야 되잖아요? 또 아무리 걸작대행진이라 해도 그 중에 위아래가 어떻게 없겠어요?


여기 하나의 진지하게 참고할 만한 순위 투표 결과가 있습니다. 레고 완제품 정보로는 최고의 사이트라 할 영국의 브릭셋 Brickset이 최근 실시한 모듈러 인기투표 결과입니다. 


> 원문 링크 : Modular building poll results



2017년 1월 15~30일 사이에 실시된 이번 투표는 브릭셋이 진행한 최초의 투표이기도 합니다.

총 12개 모델 중 하나만을 고르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마감일까지 전세계에서 9707명이 참여했습니다. 마감 후에도 기능을 닫지 않아 참여자 숫자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지만 어차피 초기 3일 정도부터 결과가 거의 굳어졌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을 겁니다.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 결과를 되짚어보겠습니다.


1위: 10243 파리의 레스토랑 (27%)

- 2014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30cm | 3층(레스토랑, 가정집, 아뜰리에)

전체 투표자의 1/4 이상이 선택했다니 압도적인 득표율입니다. 국내에서도 "단 하나만을 고르라면?"이라는 질문에 대개는 이것이 선택되곤 하죠. 그만큼 천재 디자이너의 대표적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초가 누군가, 어떤 게 제일 큰가, 더 비싼가, 무엇과 어울리나 등 퀄리티 자체와 동떨어진 물음이 아닌 어떤 게 제일 멋진 물건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다른 결과를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합니다. 2년간 모듈러에서 손을 놓았던 제이미의 복귀작이기도 합니다.


2위: 10246 탐정 사무소 (14%)

- 2015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27cm | 2/3층 두 채 연결형(당구장 & 이발소, 탐정 사무소 & 화장실, 옥탑 주방)

보는 이에 따라 당연할 수도 다소 의외일 수도 있는 결과입니다. 매우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제품이지만 탁월하게 우아하거나 아름다운지는 의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만큼 소박함, 친근감, 다른 제품들과 두루 어울리는 원만함이 최대의 장점이고 여기에 더해 구하기 쉬운 최근 제품이라는 잇점도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처음으로 건물 이곳저곳에 일련의 스토리를 엮어놓은 시도를 한 모듈러이기도 합니다. 크게 칭찬하진 않아도 싫어하는 이 또한 없는 둥근돌의 개가.


3위: 10255 어셈블리 스퀘어 (11%)

- 2017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35cm, 폭 38cm | 3층 두 채 연결형(카페 & 꽃집/빵집, 악기점 & 사진스튜디오/치과, 발레교습소 & 옥상테라스/가정집)

모듈러 10주년 기념 특별판. 처음으로 32x32 스터드라는 제약을 벗어난 1.5배 크기(32x48)의 제품. 발표 초기 여러 반응이 있기도 했으나 직접 만져본 이들일수록 포지티브로 기우는 분위기인 듯합니다. 아직 많은 이들이 접해보진 못했을텐데도 이렇게나 득표를 했다는 데 대해 주최측에서 놀라고 있기도 합니다. 각각 한 동과 두 동으로 된 두 채의 건물은 연결형으로 디자인되어있으나 조립을 시작할 때 밑판 두 장의 위치를 바꾸는 정도만으로 쉽게 분리형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인테리어는 역대최강이라는 평들입니다.


4위: 10232 팰리스 시네마 (8%)

- 2013년작 | 디자인: 아스트리드 그라벡 | 높이 38cm | 2층(로비, 상영관) | 코너형

제이미가 디자인하지 않은 세 개 중 하나. 여성 디자이너 아스트리드는 이것 외에 10224 시청과 10235 눈 덮인 마을 축제도 디자인한 바 있습니다. 몇 안되는 2층 건물이자 코너형이며 스티커가 사용되는 유일한 모듈러이기도 합니다. 다소 썰렁한 내부 탓에 국내에선 평판이 안좋은 편이지만 월드와이드한 여론은 좀 다르네요.


5위: 10185 그린 그로서 (7%)

- 2008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35cm | 3층+α(채소가게, 가정집, 가정집, 창고와 옥상테라스)

초기작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여론 또한 초기 3~5종 중에서는 이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제일 높죠. 대체로 초기작들은 중후하고 고전적인 익스테리어를 자랑하는 반면 후기작들은 아기자기하고 인테리어가 좋다고들 하는데 그러한 초기작의 특징이 대표적으로 구현되어있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백만원대에 이르는 프리미엄 때문에 이제 와서 정품을 구하기는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인테리어가 갖춰진 최초의 모듈러이기도 합니다.


6위: 10251 브릭 뱅크 (6%)

- 2016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26cm | 2층(은행/세탁소, 은행) | 코너형

최근작으로는 순위가 가장 낮습니다. 역대 가장 작은 사이즈이기도 하고, 은행이라는 소재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도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주최측의 분석입니다. 무채색 위주의 심심한 외관 또한 한몫을 한 듯하지만, 이는 대신 거의 어떤 모듈러와도 잘 어울려준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니 부족함만은 아닙니다. 10246 탐사에 이어 스토리를 엮어놓은 제품인데, 이런 시도는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네요.


7위: 10197 소방대 (6%)

- 2009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35cm | 2층(차고, 집무실)

이제부터는 대체로 예전 제품들이 하위권을 점하고 있습니다. 국내출시명이 '소방대 1932'였듯 옛날 소방서 건물과 구식 소방차를 재현한 제품입니다. 종탑 때문에 높이가 높아져서 그렇지 백화점, 은행처럼 천장이 높은 2층 건물이며 1층 내부에 소방차가 수납되는 구조는 이 제품만의 개성이겠습니다. 때문에 75827 고스트버스터즈 소방본부를 연상하는 분도 많습니다. 비록 후자가 두 배 이상의 규모와 가격이긴 하지만요.


8위: 10218 애완동물가게 Pet Shop (4%)

- 2011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26.5cm | 3층 두 채 분리형(펫샵, 가정집, 가정집 복층 | 빈집, 빈집, 옥상정원)

만 5년이 넘게 롱런하다 2016년 말에야 단종된 펫샵입니다. 10190에 이은 두 번째 분리형 건물이자[각주:3] 한 채는 인테리어 공사중, 또 하나는 2~3층이 연결된 복층 구조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담긴 제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테리어에 이미 맛 들인 팬들에게 '인테리어중'이라는 컨셉트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외관 역시 수수한 주상복합건물의 전형이어서 크게 어필하긴 어려웠던 듯.


9위: 10211 백화점 Grand Emporium (4%)

- 2010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38cm | 3층(의류, 주방용품, 토이샵) | 코너형

32x32 스터드 안에 백화점을 구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을까요? 좀 지난 제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리 좋은 득표율은 아니네요. 실제로 내부는 층마다 한 가지 종류의 물건만 파는 것으로 간소화되어있어 백화점이라기보단 작은 상가건물같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외관은 간판이며 깃발이며 회전문까지 호화판이어서 겉다르고 속다른 결과가 되고 말았죠. 에스컬레이터가 재현되어있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해외보다는 국내의 반응이 더 좋은 제품 중 하나.


10위: 10224 시청 (4%)

- 2012년작 | 디자인: 아스트리드 그라벡 | 높이 50cm | 3층(사무실들, 시장실/홀, 대회의실)

펫샵을 끝으로 일단 손을 뗀 제이미를 대신해 아스트리드가 작업한 첫 번째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이자 마지막)였던 시네마에 비해 신통찮은 성적이네요. 무려 50cm라는 역대최고의 높이(시계탑과 종탑의 힘이 큽니다만)와 여덟이나 되는 미니피겨도 큰 도움은 못된 듯합니다. 아무래도 소재 자체가 주는 딱딱한 느낌 탓이 크지 않았을까요. 외부와 내부 모두 별다른 매혹을 발산하지 못하는 느낌. 엘리베이터가 재현되어있는 유일한 건물이기도 합니다.


11위: 10182 카페 코너 (3%)

- 2007년작 | 디자인: 제이미 베라드 | 높이 36cm | 3층(카페, 호텔, 호텔) | 코너형 | 노 인테리어

10190과 더불어 최초의 두 제품 중 하나입니다.[각주:4] 보통은 이것을 1호작으로 치기 때문에 '모듈러의 조상' 대접을 받아왔죠. 그 덕에 혈통 따지기 좋아하는 국내 팬들로부터 꽤 높은 점수를 얻어왔고 10185, 10190과 함께 엄청난 프리미엄을 형성하며 '깡패 3종'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제품 자체만을 놓고 냉정히 비교평가한 결과는 이 정도입니다. 아무 인테리어도 없이 계단만 덩그마니 놓인 내부는 물론 2층과 3층이 같은 용도라는 점도 마이너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12위: 10190 마켓 스트리트 (0%)

- 2007년작 | 팩토리 제품군 | 높이 33cm | 1/4층 두 채 분리형(채소가게 | 반지하 창고, 상점, 상점, 옥탑방과 옥상테라스) | 노 인테리어

최초의 두 제품 중 하나(그래서 아무 인테리어도 없는 휑뎅그렁함), 유일한 4층 건물(비록 하나는 반지하, 하나는 옥탑방이지만), 펫샵과 함께 분리형으로 나온 두 제품 중 하나(비록 한 채는 건물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각주:5], 유일한 팩토리 제품군(덕택에 어딜 봐도 물씬 풍기는 MOC스러움). 꼴찌가 당연합니다. 더구나 부품 수도 출시가도 다른 것들의 절반이에요. 결코 그 높은 프리미엄을 감수할 만한 물건이 아닙니다.


다만 이상의 순위는 어디까지나 '타인의 취향'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죠. 단 하나의 제품에만 투표할 수 있는 설문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습니다. 제품별로 점수를 매기랬다면 조금 다른 결과였을 수도요.

반면 언제 나왔느냐, 얼마나 많이 보급됐느냐는 큰 영향을 안 끼친 듯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됐어도 탐사는 2위, 은행은 6위인가 하면 그린은 5위, 카페는 11위구요. 보유 숫자 면에서도 브릭셋 'own' 1위인 펫샵이 선호도는 8위에 불과한 반면 선호도 1위인 파리가 보유 수로는 4위, 2위인 탐사는 6위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레고로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역시 집"이라는 브릭계의 격언처럼, 시스템 브릭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 모듈러 시리즈라는 데는 전세계 AFOL들이 동의하는 듯합니다.

테크닉 플래그쉽도 흥미진진하고 UCS의 포스도 근사하지만 조물주가 된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모듈러의 매혹을 모르고 산다면 좀 허전한 레고 라이프가 아닐까요.




한편 참고할 만한 국내 설문 결과로는 브릭인사이드 설문조사 게시판에서 2016년 6월에 실시된 것이 있습니다만 일단 회원이 아니면 열람이 불가능하며[각주:6], 답변자 수가 252명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응답자도 특정 그룹에 편중되어있다는 점(한국의, 20~40대, 남성)은 감안하고 보셔야겠습니다.

이 설문은 모듈러 제품 소장 갯수별로 그룹을 나누어 진행했으며 1인당 3개까지 선택이 가능했는데, 1~3위만 발췌 인용하자면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당시 출시되지 않았던 10255는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전종 소장자: 1위 그린 그로서(23%), 2위 카페 코너(19%), 3위 파리의 레스토랑(18%)

  • 6~10개 소장자: 1위 파리의 레스토랑(24%), 2위 그린 그로서(23%), 3위 카페 코너(16%)

  • 1~5개 소장자: 1위 파리의 레스토랑(20%), 2위 탐정 사무소(12%), 3위 그린 그로서(9%)

  • 미소장자: 1위 그린 그로서(8%), 2위 파리의 레스토랑(8%), 3위 카페 코너(7%)


미소장자 그룹의 답변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지만 1위 그린, 3위 카페라는 데서는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떠오르네요. 전반적으로 그린과 카페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은 것은 올드 제품 및 '원조'에 대한 고평가가 극심한 해당 커뮤니티의 분위기에 기인한 듯합니다.[각주:7]

반면 브릭셋에서는 버젓이 4위에 오른 시네마가 대다수 그룹에서 최하위(미소장자 그룹에서만 뒤에서 공동 2위)를 기록한 것도 눈에 띕니다. 허전한 내부를 많이 지적하지만 그렇다면 카페의 점수는 더 낮았어야 할테고, 스티커에 유독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커뮤니티 내 여론에서 원인의 하나를 찾을 수 있겠네요.


  1. 예외도 있으니 첫 해인 2007년에 10182 카페 코너와 10190 마켓 스트리트가 함께 출시된 바 있습니다. 10190은 현재 모듈러의 하나로 공인되어 있습니다. 반면 2012년에 나온 10230 미니 모듈러 콜렉션은 시리즈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정설입니다. [본문으로]
  2. 이 또한 예외가 있어서 10주년 기념모델인 2017년의 10255 어셈블리 스퀘어는 32x48 스터드입니다. 32x32 건물과 그 절반 크기인 32x16 건물이 모여있죠. [본문으로]
  3. 32x16 스터드 밑판 두 개에 각각 한 채씩 건물이 들어섭니다. 원하는대로 좌우를 바꿀 수도, 다른 건물과 조합할 수도 있겠죠. [본문으로]
  4. 둘은 출시일이 정확히 똑같은 2007년 10월 7일입니다. 제이미 베라드의 인터뷰 동영상에 의하면 모듈러 시리즈를 새로 준비하던 중 10190의 프로토타입을 접했고, 해당 디자이너를 아예 본사로 불러와 함께 수정 등 준비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5. 10255는 간단한 개조로 분리가 가능할지언정 출시 자체는 연결형으로 나왔으니까요. [본문으로]
  6. 회원가입이 되어있는 분들은 문화광장 -> 설문조사 -> 537번 '모듈러 중 뭐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항목을 찾으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7. 단적인 예로 모델 DB의 '상위 Rank TOP 50' 중 1~9위가 모두 1980~90년대 제품입니다. 20위까지 살펴봐도 2000년 이후 제품은 고작 6개에 불과해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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