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르: 라그나로크 Thor: Ragnarok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 톰 히들스턴, 마크 러팔로, 케이트 블란쳇, 테사 톰슨, 제프 골드블럼, 이드리스 엘바, 안소니 홉킨스 등
제작: 마블 스튜디오 (미)
개봉: 2017년 10월 25일
평가: IMDb 이용자 평점 7.9 | 메타스코어 평점 74 | 로튼 토마토 신선도 95% | 나의 평점 8
토르: 천둥의 신: IMDb 이용자 평점 7.0 | 메타스코어 평점 57 | 로튼 토마토 신선도 77% | 나의 평점 7
토르: 다크 월드: IMDb 이용자 평점 7.0 | 메타스코어 평점 54 | 로튼 토마토 신선도 66% | 나의 평점 7
(0) 시작하기 전에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누설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긴 해요.
IMDb 이용자 평점은 갈수록 조금씩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머지 평점들은 개봉 후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전편들과의 점수 차이는 이 점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1) 짧은 평
리벤져스 오브 갤럭시
망치와 장발을 내려놓은 대신 유머와 케미를 집어든 등극기
토르 트릴로지 중 단연 최고 - 물론 상업용 오락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2) 영화 이야기
무려 라그나로크입니다. 간단히 말해 북유럽판 아마겟돈이죠. 엄연히 고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신화이고, 서양에서는 구약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 다음 가는 인지도를 갖고 있다죠. 그런데 정반대 영화가 나왔어요. 제일 어둡고 무겁고 심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반대로 제일 화사하고 웃기고 가볍군요. 가오갤 시리즈의 감독이 마블 영화 중 최고라고 극찬한 이유가 있었네요.
1, 2편도 스페이스 판타지 + (지구 중심의) 히어로물 + 경량급 개그의 조합이었지만 구분선이 엄연했죠. 우리의 근육왕자님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무게만 잡고 계셔야 했고 개그는 달시나 로키, 그도 아니면 토니 스타크의 몫이었습니다. 근데 초반부터 직접 던지시네요. 표정과 목소리 톤까지 확 달라요.
결과는 적중입니다. 전편들을 훌쩍 뛰어넘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군요. 다시 보고 돌아서도 며칠만에 싹 잊혀지는 전편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인상깊은 뭔가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죠. 특히 사카아르 행성을 배경으로 한 전반부는 심심할 때마다 돌려보면 좋을 명장면 리스트에 올려도 좋을 듯. 투 아웃 뒤의 역전 홈런이라니 울버린 삼부작이 생각나네요. 비록 꺾은 방향은 정반대지만.(말 나온 김에, [로건] 꼭 보세요. 다크 나이트를 기억하신다면 더욱.) 1
물론 담아낸 뭔가란 캡틴 아메리카 2, 3편과는 전혀 다른 류입니다. 마블의 큰 그림으로 보아 그래야만 하기도 했을 거예요. 진짜 심각한 일대결전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그 전에 아마겟돈이라뇨. 비주얼과 캐릭터, 액션과 유머로 한껏 분위기를 띄워놓는 게 오프닝 이벤트의 역할 아니겠어요. 이를 위해 왕자님은 예능 프로에라도 나온 듯 자신을 모두 내려놓았고, 감독님은 지구라는 배경을 저 뒤로 빼버렸습니다.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비중이 확 줄었죠.
이게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는 별이 박살나는데 마냥 유쾌할 수 있겠어요? 스타워즈부터 가오갤까지, 이른바 스페이스 오페라로 불리는 장르물이 부담없이 즐기기 좋은(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한) 결정적 이유가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의 일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유쾌한 현실도피를 위한 핵심장치일 겁니다.
개그와 비주얼을 많이들 칭찬하시지만 캐릭터와 음악도 못지 않았습니다. 1, 2편을 국산 맥주처럼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캐릭터 간의 케미 문제였잖아요. 혼자 다 하는 남주, 스테레오타입 여주, 나머지는 병풍. 그나마 로키라도 동분서주했으니 망정이지 레이디 시프와 워리어즈 쓰리(판드랄, 호군, 볼스타그)는 외우기 힘든 이름값이라도 했는지 의문이고, 말레키슨지 말라깽인지 하는 메인 빌런은 왠지 노약자 분위기...
요거 싹 바뀌었습니다. 토르와 로키의 케미, 하늘을 찌릅니다. 로키는 갈수록 멋있어지는 듯요. 생각지도 못했던 헐크와의 케미는 또 어떻구요. 어벤져스 주요멤버들 간의 관계 중 이만한 훈기를 느껴본 적이 없네요. MCU 최초의 여성 메인 빌런으로 등극한 헬라와의 대립구도 또한 흥미로왔습니다. 그 밖에도 캐릭터가 하나같이 생생하고 관계설정이 좋아서 이 재미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였어요.
끝으로 음악. 예고편부터 도입부를 거쳐 하이라이트까지 움켜잡고 있는 '타이틀 트랙'은 바로바로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입니다. 3집 첫 곡이었죠. 원래가 같은 배경을 다룬 곡인데다 영화의 톤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지라 금상첨화 화룡점정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배너 박사가 얻어입은 듀란듀란 티셔츠만큼이나 레트로 느낌 물씬한 테크노-뉴웨이브 풍 배경음악이 시종일관 기분을 맞춰주네요. 연출에서 음악까지 박자가 착착 맞은 베리웰메이드 오락영화였습니다.
(3) 만든 이들 이야기
이번이 사실상의 헐리우드 데뷔작인 뉴질랜드 출신 감독이야 앞으로 잘해주기만을 바랄 뿐이구요. 이미 칭찬 다 한 토르, 로키, 헐크, 내년 5월에 만나요. 헤임달은 이번 활약이 제일이었던 것 같고(제발 그 눈의 비밀 좀...) 오딘과 워리어즈 쓰리 그동안 고생많았어요. 안소니 홉킨스의 히어로물 출연은 이게 마지막이 아닐지. 근데 시프는 대체 어디 간 거냐.
케이트 블란쳇 얘기가 많죠. 여기저기서 헬라교 지부가 설립되고 있다면서요? "이로써 갈라드리엘마저 타락했다"는 재미난 장탄식도 있었습니다. 워낙 탄탄한 배우입니다만 내일모레 오십에 선보이는 불꽃 액션이라니 존경스럽습니다. 듣자니 자녀들이 엄마 마블물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해서 맡게 됐다던데, 하여튼 히어로물이 진공청소기처럼 명배우들을 빨아들이는 시대네요. 2
제프 골드블럼도 만만찮았죠. 역시 첫 히어로물로 알고 있습니다만 [플라이]에서 [쥬라기 공원], [인디펜던스 데이]까지 잔뼈가 굵은 노장의 존재감 또한 폭발적이었습니다. 설정상 형제 관계라는 콜렉터의 베네치오 델 토로를 능가하는 똘끼 만발 능청 연기는 사카아르 장면을 자꾸 돌려보게 만드는 데 일조할 듯.
참고로 사카아르 에피소드는 원작 신화는 물론 토르 코믹스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은 코믹스 [플래닛 헐크]에서 가져온 설정이었던 거죠. 솔로 무비 제작이 난망한 헐크인 만큼 이런 식으로 할당해주는 것도 멋진 아이디어였다고 봅니다. 하여간 끼워맞추기의 대가들이에요. 3
제일 실망이었던 건 발키리입니다. 테사 톰슨, 낯익은 배우는 아닌데 연기나 액션은 괜찮지만 이미지 자체가 너무 동글동글 부드럽지 않나요? 발키리(혹은 발퀴레) 하면 우선 바그너의 그 장쾌한 곡조부터 떠오르는 저로선 멜로드라마나 시트콤에 어울릴 듯한 얼굴에서 슬픈 과거를 지닌 초강력 여전사의 향기를 맡아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조 샐다나(가모라)같은 배우는 역시 흔치 않은 거겠죠? 4
깨알같은 배역들도 여전했죠. [인피니티 워] 참전을 준비 중일 닥터 스트레인지의 '우정출연'도 재미있었고, 바위 외계인 코르그의 모션 캡처와 목소리는 다름아닌 감독이 직접 맡은 거라더군요. 외모와 절대 안 맞는 목소리 노린 거다 싶더라니, 코미디 하던 경험을 십분 써먹었군요.
하지만 선감상 후검색으로 제일 놀랐던 건 맷 데이먼이었습니다. 저처럼 정보 없이 영화 보신 분, 짐작하시겠어요? 초반부, 로키 찬양 선전극 씬에서 로키 역할을 맡은 연극배우가 그였다더군요. 긴 흑발 탓인지 절대 못 알아보겠던데, 아직 안 보신 분들 놓치지 말고 잔재미 얻어가세요.
(4) 레고 이야기
하고많은 레고 히어로물 중에서 작년까지 토르 솔로 무비를 테마로 한 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라그나로크]가 개봉한 올해 와서야 2개 출시된 게 전부예요. 나머지는 다 어벤져스의 일원으로만... 듀플로와 주니어는 물론 브릭헤즈도 전무합니다. 심지어 베놈과 마샨 맨헌터마저 나왔는데 말이죠(코믹콘 한정판이긴 하지만).
2017년에 나온 토르 관련 제품 2종. 왼쪽부터 76084, 76088. [출처: Brickset]
인기와 연혁에서 비교가 안될 배트맨, 스파이더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솔로 무비가 지금껏 세 편이나 나왔는데 헐크보다도 밀리는 현실은 전작의 감독들을 탓해야 할까요?^^;; 좌우지간 레고 토르 제품은 그가 미니피겨로 등장한 걸 몽땅 합쳐 9개에 불과하며(그나마 하나는 폴리백, 하나는 출시예정), 토르 없이 로키만 들어있는 게 간신히 둘 더 있는 정도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볼게요. 5
[어벤져스](1편) 관련제품
- (6867 로키의 코스믹 큐브 탈출: 2012년. 181 피스. \43000 / $20. 로키, 아이언맨, 호크아이 + 쉴드의 트럭. 비록 토르는 없지만 모두 주연급이고 트럭에 대한 평도 후했던 제품.)
- 6868 헐크의 헬리캐리어 대격돌: 2012년. 389 피스. \92500 / $50. 헐크의 헬리캐리어 내 난동 씬을 재현한 제품. 토르, 로키, 헐크(빅피), 호크아이 + 헬리캐리어 내부(물론 일부만), 쉴드 제트기. 미피 외엔 벌크로 보시면 되고 미피의 중복성도 심해 평판은 별로입니다.
- 6869 퀸젯 공중전: 2012년. 735 피스. \124000 / $70. 치타우리 침공 씬을 재현한 제품. 토르, 로키,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치타우리 병사 + 쉴드의 퀸젯, 치타우리의 '전차'. 미피도 미피지만 퀸젯의 인기 또한 낮은 것이 아니어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 30163 토르와 코스믹 큐브: 2012년. 25 피스. 프로모션용 미피 폴리백. 앞의 두 제품에 들어있는 것과 동일한 토르 외에 테서랙트랍시고 브릭 몇 개 더 포함된 게 전부. 토르 미피 가격 잡는 데는 한몫했던 물건.
- 76030 어벤져스 대 히드라의 결전: 2015년. 220 피스. \43000 / $20. 초반부의 히드라 기지 공격 씬을 재현한 제품. 토르, 호크아이, 히드라 부하 + 어벤져스의 4x4 차량, 히드라의 오프로더 차량. 엇비슷한 미피에다 그저그런 차량들.
- 76038 어벤져스 타워 공격: 2015년. 515 피스. \124000 / $60. 울트론 MKI의 등장 씬을 재현한 제품. 토르, 아이언맨, 울트론 MKI, 아이언 리전(껍데기) 둘 + 어벤져스 타워. 미피보다는 건물을 위해 많이들 찾았던 모델. 타워가 너무 낮다며 확장에 나선 분도 꽤 계셨죠.
[토르: 라그나로크] 관련제품
76084 아스가르드를 위한 전투: 2017년. 400 피스. \75000 / $50. 후반부의 정면대결을 재현한 제품. (헬멧 쓴) 토르, 브루스 배너, 헬라, 발키리, 버서커 둘 + 펜리르(거대늑대) 조립형 피겨, 우주선 코모도어 호. 대부분 미피를 위해 구입하실 거예요. 토르를 제외한 모든 미피가 첫 출시인데다 토르마저 투구 쓴 모습은 이번 두 제품이 처음이라 수집에 제격입니다. 6
76088 토르 대 헐크: 아레나 전투: 2017년. 492 피스. \90000 / $60. 전반부의 사카아르 격투장 씬을 재현한 제품. (헬멧 쓴) 토르, (격투가 차림의) 헐크(빅피), 로키, 그랜드마스터, 사카아르 보초 + 격투장 일부(1/4 남짓). 역시 건물 보고 살 사람은 거의 없겠죠. 미피 신선도는 위보다 좀 떨어지는데 가격은 더 비쌉니다. 미피 보유 여부에 따라 선택하면 될 듯.
- 76018 헐크의 연구소 소동: 코믹스 [어벤져스 어셈블] 버전. 2014년. 398 피스. \105000 / $50. (수염 없는) 토르, 헐크(빅피), 팔콘(코믹스 버전), 모독, 태스크마스터 + 연구소 내부. 다시 한 번 미피 중심. 하나같이 이 제품에만 있거나(모독, 태스크마스터) 조금이라도 다른 버전이긴 합니다.
- (10721 아이언맨 대 로키: 주니어스 테마. 2016년. 66 피스. \18000 / $13. 로키, 아이언맨 + 아이언맨의 스포츠카, 테서랙트 시설. 주니어스라는 특징을 가리고 보면 장점을 찾기 어려운 물건.)
- 76091 토르 대 로키: 마이티마이크로스 시리즈. 2018년 1월 출시예정. 기존과 동일한 숏다리 미피 둘 + 초소형 탈것 둘 구성. 가격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더해 2018년 1월 출시예정인 인피니티 워 제품 6종 중 한둘 정도엔 토르가 들어있을테고, 4월 출시예정인 브릭헤즈 신제품 중에도 토르가 끼어있을지 모르죠.(아니라는 설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2017년 이전 것들은 안 그래도 단종인데 하나같이 해외의 2배에 달하는 국내출시가를 휘날리는 탓에 손이 쉽게 안 가는 게 사실입니다.
역시 미피 수집이 주종이라면 브릭링크가 필수인 듯해요. 대부분의 히어로물/스타워즈 미피를 저렴하게 개별구입할 수 있는데다 그 동네의 약점인 높은 배송료와 최소주문액수에서 제일 자유로운 아이템이 바로 미피이기도 하니까요. 이것저것 따져가며 현명한 소비 하시고, 남긴 돈으로 극장을 한 번이라도 더 가자구요.
- 이를테면 스타워즈의 주요 전투씬들, 토토로가 날아다니는 장면들, 그녀들의 눈부신 리즈 시절같은 것들 말이죠. [본문으로]
- 톨킨 시리즈의 삼대 엘프가 마블에선 하나같이 빌런으로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엘론드의 휴고 위빙은 [캡아] 1편에서 레드 스컬로, 스란두일의 리 페이스는 [가오갤] 1편에서 로난으로 출연했었죠. [본문으로]
- 이 원작 코믹스의 작가가 한국계 혼혈인 그렉 박이라는 사실도 DC의 짐 리와 함께 이야깃거리의 하나입니다. 미국 만화산업계에서 한국계의 활약은 뿌리가 깊죠. 전설적인 입지의 넬슨 신 감독부터 시작해 [이온 플럭스]의 피터 정, 그리고 요즘의 제니퍼 여와 피터 손에 이르기까지, 한류보다도 오래됐습니다. [본문으로]
- 영어로는 'Rides of the Valkyries', 한국에선 '발퀴레의 기행/기승/행진' 등으로 번역합니다. '결혼행진곡'과 함께 바그너가 쓴 제일 유명한 멜로디죠. [지옥의 묵시록]의 헬리콥터 공습장면으로도 유명합니다. [본문으로]
- 브릭셋에서 대충 살펴봤더니 배트맨 미피가 들어있는 제품이 94개(...), 스파이더맨이 33개, 3위는 아이언맨(20개), 4위가 캡아(16개), 5위 슈퍼맨(14개), 6위 원더우먼(10개), 7위 헐크(9개), 토르는 8개로 간신히 8위더군요.(출시예정이 제외된 숫자입니다.) 제품 명칭에 이름을 넣은 횟수로도 헐크가 다섯 번인 반면 토르는 이번 신제품 하나가 처음입니다. [본문으로]
- 헬라의 부하들. 북구 원어로는 그 베르세르크가 맞습니다. 영화에선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었던 것 같은데 레고는 이렇게 호칭을 부여했네요. 원래 뜻은 광(狂)전사로, 독버섯 성분에 의지해 전장에서 미쳐날뛰던 바이킹 전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네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