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 글: 앨런 무어
- 그림: 데이브 기본스
- 발표: 1986~1987, DC 코믹스. 12회 연재
- 국내 출간
- 초역본: 2008, 정지욱 옮김, 시공사. 두 권으로 분권, 페이퍼백.
- 디럭스 에디션: 2019, 임태현 옮김, 시공사. 개역판, 한 권으로 합본, 하드커버.
- 관련작
- 비포 왓치맨: 2012~2014, DC. 여러 작가가 나눠 맡은 주인공별 프리퀄 옴니버스. 단행본으로는 4권이며 2019~2021년에 걸쳐 시공사에서 모두 출간. 임태현 옮김.
- 둠스데이 클락: 2017~2019, DC. 제프 존스 글, 개리 프랭크 & 브래드 앤더슨 그림. 시퀄 겸 기존 DC 유니버스와의 크로스오버 작. 2021년 시공사에서 [둠스데이 클락 컴플리트 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임태현 옮김.
- 영상화
- 영화 [왓치맨]: 2009, 잭 스나이더 감독. 극장판 161분, 확장판 190분, 최종판 215분. 원작과 대체로 같은 내용.
- 드라마 [왓치맨]: 2019, HBO. 단일 시즌 9부작. 원작의 34년 후인 당대 시점의 시퀄. [둠스데이 클락]과는 전혀 다른 내용.
처음 나온지 무려 35년이 지난, [스타 워즈]와 조용필만큼이나 오래된 고전. 일각의 주장에 의하면 DC, 나아가 히어로물, 더 나아가 그래픽노블(서양 단행본 만화)을 통틀어도 최고의 걸작 중 하나. 1
DC/마블 만화책의 국내 정발이 시작된 게 2008년이라죠.(슈퍼맨 70주년...) 놀랍게도 그 1호로 나온 게 본작입니다. 출판사에서 배짱을 부린 셈인데 반응이 괜찮았다니 한국의 만화 애호가들 내공이 과연 만만치 않았던 게죠.
앞선 게시물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유럽에 [잉칼]이 있다면 미국엔 [왓치맨]이 있다"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대다수 분들에겐 순서를 거꾸로 해야 전달이 빠르겠지만요.) 아예 하나 더 보태서 이렇게 정리하죠.
일본에 [나우시카]가 있다면 미국엔 [왓치맨]이 있고 유럽엔 [잉칼]이 있다.
여기서의 [나우시카]는 물론 코믹스를 가리킵니다. 애니 버전보다 서너 배쯤 훌륭한 미야자키 하야오 최고의 걸작이죠. 2010년 학산에서 전7권으로 완역된 뒤 여러 번 재출간된 바 있습니다. [잉칼]에 대해서는 앞선 게시물(구판)과 재출간 정보를 참고하시구요.
반면 [왓치맨]은 그들과는 또다른, 어딜 봐도 DC 답고 미국스러운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SF적 요소도 좀 있고 실제와는 살짝 거리가 벌어진 가상세계 설정이긴 하지만 현실 비판,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그득한 다크 히어로물의 전형이죠. 다만 이게 35년 전에 나왔다는 거. 2
이 작품 이후 히어로물, 특히 DC가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고도 하고, 이 뒤로 나온 히어로물 중 본작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걸 찾기 힘들다고도 합니다. 고뇌하는 히어로, 오해받는 히어로, 정부 또는 대중과 갈등하는 히어로. 요즘에야 밑반찬에 가깝지만 그 시작이 여기라는 거죠. 단, 같은 해에 나온 (그리고 본작의 작가와는 죽어라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함께.
주제의식만 묵직한 것도 아닙니다. 작화는 좀 제쳐두고(전형적인 미국식 히어로물 그림체입니다. 삽화에 가깝고 동적인 묘사엔 영 꽝인), 구성이 실로 대단해요. 영화의 몽타주 기법처럼 두 장면 오가기, 극중극 형식의 활용, 챕터 간 혹은 챕터의 시작과 끝을 시퀀스화, 캐도 캐도 새로 발견되는 무수한 암시들, 아예 만화가 아닌 텍스트를 참고자료처럼 첨부하기 등 온갖 기법을 동원해 작품의 레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중한 주제의식, 완성도 높은 줄거리, 경탄할 만한 기법이 만난 끝에 웬만한 소설책만큼이나 시간을 들여야 소화가 가능한 고난도 명작이 나왔습니다. 등장인물 또한 숫자도 많은데다 생소한 이름 뿐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난이도가 두 단계는 올라갑니다. 아예 저처럼 메모장에 캐릭터를 정리해가며 보시는 것도 좋을 듯. 3
마지막으로 한 고개를 더했던 건 초역본의 좋지 않은 번역 수준이었습니다. 거의 딱딱한 직역투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나름 주석도 열심히 달고 애쓰셨습니다만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 깨알같은 글씨에 직역투까지 더해져 소화불량 전후를 오가기 일쑤였어요. 다행히 요즘엔 한결 개선된 개역판(디럭스 에디션)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이쪽을 고르시길 권합니다.
P.S. 뒤늦게 넷플릭스로 영화도 봤습니다. 최종판에 비해 한참 가위질 당한 극장판이라는 점은 감안하시고, 그냥 안보셔도 돼요. 그럴 시간에 그래픽 노블 버전을 한 챕터라도 더 혹은 다시 보는 게 낫습니다.(아니면 최종판을 찾아보시거나요.) 비교하자면 해리 포터 소설과 영화 정도의 차이랄까요? 위대한 만화를 포장만 요란한 B급 영화로 격하시키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좋은 사례 되겠습니다. 잭 스나이더는 역시 광고나 뮤직 비디오 만들어야 될 사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