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왓치맨], DC < 히어로물 < 그래픽노블의 한 정점

apparat 2021. 8. 6. 06:09

- 원작

  • 글: 앨런 무어
  • 그림: 데이브 기본스
  • 발표: 1986~1987, DC 코믹스. 12회 연재

- 국내 출간

  • 초역본: 2008, 정지욱 옮김, 시공사. 두 권으로 분권, 페이퍼백.
  • 디럭스 에디션: 2019, 임태현 옮김, 시공사. 개역판, 한 권으로 합본, 하드커버.

- 관련작

  • 비포 왓치맨: 2012~2014, DC. 여러 작가가 나눠 맡은 주인공별 프리퀄 옴니버스. 단행본으로는 4권이며 2019~2021년에 걸쳐 시공사에서 모두 출간. 임태현 옮김.
  • 둠스데이 클락: 2017~2019, DC. 제프 존스 글, 개리 프랭크 & 브래드 앤더슨 그림. 시퀄 겸 기존 DC 유니버스와의 크로스오버 작. 2021년 시공사에서 [둠스데이 클락 컴플리트 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임태현 옮김.

- 영상화

  • 영화 [왓치맨]: 2009, 잭 스나이더 감독. 극장판 161분, 확장판 190분, 최종판 215분. 원작과 대체로 같은 내용.
  • 드라마 [왓치맨]: 2019, HBO. 단일 시즌 9부작. 원작의 34년 후인 당대 시점의 시퀄. [둠스데이 클락]과는 전혀 다른 내용.

 

△ 2008년 시공사 초판 1쇄본(일명 스마일 버전)의 표지

 

△ 2008년 시공사 개정판의 표지. 영화 개봉에 맞춰 표지를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 2019년 시공사 디럭스 에디션의 표지

 

처음 나온지 무려 35년이 지난, [스타 워즈]와 조용필만큼이나 오래된 고전. 일각의 주장에 의하면 DC, 나아가 히어로물, 더 나아가 그래픽노블(서양 단행본 만화)을 통틀어도 최고의 걸작 중 하나.[각주:1]

 

DC/마블 만화책의 국내 정발이 시작된 게 2008년이라죠.(슈퍼맨 70주년...) 놀랍게도 그 1호로 나온 게 본작입니다. 출판사에서 배짱을 부린 셈인데 반응이 괜찮았다니 한국의 만화 애호가들 내공이 과연 만만치 않았던 게죠.

 

앞선 게시물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유럽에 [잉칼]이 있다면 미국엔 [왓치맨]이 있다"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대다수 분들에겐 순서를 거꾸로 해야 전달이 빠르겠지만요.) 아예 하나 더 보태서 이렇게 정리하죠.

 

일본에 [나우시카]가 있다면 미국엔 [왓치맨]이 있고 유럽엔 [잉칼]이 있다.

 

여기서의 [나우시카]는 물론 코믹스를 가리킵니다. 애니 버전보다 서너 배쯤 훌륭한 미야자키 하야오 최고의 걸작이죠. 2010년 학산에서 전7권으로 완역된 뒤 여러 번 재출간된 바 있습니다. [잉칼]에 대해서는 앞선 게시물(구판)과 재출간 정보를 참고하시구요. 

 

반면 [왓치맨]은 그들과는 또다른, 어딜 봐도 DC 답고 미국스러운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SF적 요소도 좀 있고 실제와는 살짝 거리가 벌어진 가상세계 설정이긴 하지만[각주:2] 현실 비판,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그득한 다크 히어로물의 전형이죠. 다만 이게 35년 전에 나왔다는 거.

 

이 작품 이후 히어로물, 특히 DC가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고도 하고, 이 뒤로 나온 히어로물 중 본작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걸 찾기 힘들다고도 합니다. 고뇌하는 히어로, 오해받는 히어로, 정부 또는 대중과 갈등하는 히어로. 요즘에야 밑반찬에 가깝지만 그 시작이 여기라는 거죠. 단, 같은 해에 나온 (그리고 본작의 작가와는 죽어라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함께.

 

주제의식만 묵직한 것도 아닙니다. 작화는 좀 제쳐두고(전형적인 미국식 히어로물 그림체입니다. 삽화에 가깝고 동적인 묘사엔 영 꽝인), 구성이 실로 대단해요. 영화의 몽타주 기법처럼 두 장면 오가기, 극중극 형식의 활용, 챕터 간 혹은 챕터의 시작과 끝을 시퀀스화, 캐도 캐도 새로 발견되는 무수한 암시들, 아예 만화가 아닌 텍스트를 참고자료처럼 첨부하기 등 온갖 기법을 동원해 작품의 레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중한 주제의식, 완성도 높은 줄거리, 경탄할 만한 기법이 만난 끝에 웬만한 소설책만큼이나 시간을 들여야 소화가 가능한 고난도 명작이 나왔습니다.[각주:3] 등장인물 또한 숫자도 많은데다 생소한 이름 뿐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난이도가 두 단계는 올라갑니다. 아예 저처럼 메모장에 캐릭터를 정리해가며 보시는 것도 좋을 듯.

 

마지막으로 한 고개를 더했던 건 초역본의 좋지 않은 번역 수준이었습니다. 거의 딱딱한 직역투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나름 주석도 열심히 달고 애쓰셨습니다만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 깨알같은 글씨에 직역투까지 더해져 소화불량 전후를 오가기 일쑤였어요. 다행히 요즘엔 한결 개선된 개역판(디럭스 에디션)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이쪽을 고르시길 권합니다.

 

P.S. 뒤늦게 넷플릭스로 영화도 봤습니다. 최종판에 비해 한참 가위질 당한 극장판이라는 점은 감안하시고, 그냥 안보셔도 돼요. 그럴 시간에 그래픽 노블 버전을 한 챕터라도 더 혹은 다시 보는 게 낫습니다.(아니면 최종판을 찾아보시거나요.) 비교하자면 해리 포터 소설과 영화 정도의 차이랄까요? 위대한 만화를 포장만 요란한 B급 영화로 격하시키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좋은 사례 되겠습니다. 잭 스나이더는 역시 광고나 뮤직 비디오 만들어야 될 사람인 것 같아요.

 

  1. 보통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본작까지를 3대장으로 꼽습니다. [본문으로]
  2. 예컨대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이겼다든가, 닉슨이 그만두긴커녕 5선을 해먹고 있다든가... [본문으로]
  3. 수위 역시 절대 저연령층이 봐도 될 만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15금. 첫 페이지만 보면 바로 수긍하실 거예요. 영화 역시 19금이며 미국에서도 R등급이었으니까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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