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브릭

예술의 시작은 브릭: 비 페스타 B-Festa 2017 관람기

apparat 2017. 7. 9. 06:15
  • 행사: 비 페스타 B-Festa 2017
  • 기간: 2017.7.8 ~ 7.9
  • 장소: 서울 학여울역 앞 SETEC
  • 시간: am 10:00 ~ pm 6:00
  • 티켓: 10000원 (36개월 이상 공통)
  • 주최: BRICKnART
  • 링크: 공식 홈페이지



이틀 동안 개최되는 행사 놓치지 않으려 얼른 다녀와서 장문의 관람기를 쓰다 막판에 날려먹는 바람에 약평과 몇 장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저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요.ㅠㅠ 티스토리의 임시저장 기능이 크롬에서는 작동 안하는 게 기본인지라... 여러분도 조심하셔요.[각주:1]


총평: 남다른 의미와 뛰어난 출품작들이 부족한 기획력에 가려 아쉬웠던 행사


좋았던 점부터 열거하자면요.

우선 '남다른 의미' 부분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열린 대다수의 브릭 관련 행사와 달리 특정 커뮤니티(들)라는 벽이 구획을 짓고 있지도, 더욱이 특정 대형 업체(구체적으로 레고 사)라는 장벽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지도 않았던 점이 각별했습니다.


커뮤니티의 벽이 없으면 두 가지가 좋습니다. 첫째, "우리 커뮤니티 회원 누구나 기본 요건만 되면 출품하실 수 있어요"가 아니므로 출품작들의 평균 퀄리티 향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커뮤니티가 아닌 창작가 자신이 자연스럽게 돋보이게 됩니다.


특히 한국 브릭 커뮤니티들은 어차피 회원의 중복이 극심하고 커뮤니티별 전문성도 없기 때문에 의미있는 구획이 되질 못합니다.(후원사 입장에서는 관리하기 편해 좋겠지만요.) 이런 답답함이 없는 게 좋았습니다. 물론 이번 행사에도 일부 보였던 지역별, 분야별(예컨대 테크닉 전문) 모임들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예외겠구요.[각주:2]


△ 얀얀이 님의 타이타닉. 선체가 윙바디처럼 열리면 내부 디오라마가 펼쳐집니다.


△ 후추 님의 스카리프 전투. 스타워즈 작품들을 따로 모아놓은 코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더 속시원한 건 특정 업체의 속박에서 벗어나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고 사의 부품으로 만든 창작물이 아니면 안되고, 레고 사의 제품에 기반한 디오라마나 개조물이 아니면 안된다는 제약규정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브릭계가 그런 데 너무 얽매이는 건 길게 봐서 좋을 게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옥스포드 등 타 업체 관련 출품작도 보이고, 서드파티 부품이 적극활용된 밀리터리 창작물도 놓여있고[각주:3], LED 라이팅 부품이며 커스텀 미니피겨, 장식장 등 다양한 군소 업체의 제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결 풍성해보이지 않나요? 미니언즈가 가득한 디오라마도 전시되고 S-Brick 시연 부스도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골치 아프게 의미 안 찾고 출품작만 봐도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스타워즈, 어벤저스, 밀리터리, 테크닉 등 분야별로 나뉘어있는 창작품들은 하나같이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어요. 라이팅의 비중이 중요한 작품을 위해 암실이 별도로 마련되었다든지 한국테마 기획전이 꾸려진 것도 좋았습니다.


△ 한국테마 기획전 공간.


△ 한국테마 기획전 중 성당돈타워즈 님의 창작품들. 추억소환력 극강.


특히 한국테마 기획전은 몇 번을 칭찬해도 좋을 듯합니다. 더 살려나가야 할 부분이고, 지자체와 기관들도 반길 만한 콘텐트이므로 후속 전시, 순회 전시도 적극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언제까지 유럽 전통물과 미국 최신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말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빠뜨릴 수 없네요.


훌륭한 출품작들에도 불구하고, 과연 무료입장이었던 브릭코리아 컨벤션 2016보다 나았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다시 한 번, 얕고 좁은 한국 브릭계의 한계겠죠. 하지만 기획사로서는 당연히 미리 감안하고 극복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특히 부대행사가 문제였습니다. 이쪽에서 차별화를 노렸는지 모르겠지만 낫게 차별화된 게 없습니다. 유기적 연관성도 없고 어디서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돛대기 시장처럼 시끌벅적하기만 했어요. 자유조립, 색칠놀이 등 아이들을 위한 부대행사는 이미 익숙한 것이었고 가수, 비보이, 마술 등으로 채워진 무대공연은 본행사와 완전히! 따로놀았습니다. 몇몇 브릭 관련 이벤트가 있었지만 이 역시 좀 약했고 말이죠.


특히 무대 쪽의 소란스러움과 계속 틀어대는 배경음악은 소음공해 자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볼륨도 너무 크고 음향기기 성능도 안 좋아 귀가 아프더군요. 무대에서 뭔가가 진행될 때는 앞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이게 무슨 전시회입니까. 시끄럽고 정신 없기만 하면 다 페스타예요?


△ 행사장 중 창작품 전시공간. 메인이 아닐까 싶은데 정작 행사장 오른쪽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선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업체 부스들이 있는 건 좋은데 그 다음은 또 포토존이에요. 전시공간이 시작된 건지 아닌지 알 수도 없어요. 그리고는 테크닉의 주행을 위한 '경기장'들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이싱은 줄 서서 한 명씩 해야 하는 것이고 창작품 시연은 잠깐 하고 마네요. 도대체 전시공간은 어디인 걸까요?


처음엔 좀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혹시 전시작의 전부인가 싶어서요. 저 오른쪽으로 꽤 많은(그러나 넉넉할 만큼 많은 건 또 아니었던) 전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서야 마음이 놓였지만 좋은 동선으로는 보이지 않더군요. 전반적으로 행사 기획의 경험과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여러 한계와 어려움이 있으셨겠죠. 그래서 아쉬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올해가 첫 행사라니 내년 2회 때는 한결 나아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특히 분야별 협동작품같은 게 있었으면 해요. 디오라마면 디오라마, 기차면 기차, GBC...는 우리나라에선 좀 어려우려나요? 관람객 참여형 작품/이벤트도 준비될 수 있겠고[각주:4] 게임, 액세서리 등 관련 상품도 훨씬 많을 테구요. 특히 그놈의 '소음공해'는 제발 좀 해결하시길.


△ BrickPark 님의 디즈니 캐슬. LED 라이팅 작업들을 따로 모아놓은 '어두운 방' 안에 있습니다. 최고 인기작품 중 하나입니다. 절대 지나치지 마세요. 


남는 건 역시 멋진 창작품이더군요. 크건 작건, 움직이건 빛나건, 우리 살던 옛모습이 됐든 어느 거창한 유니버스가 됐든 뛰어난 아이디어와 공 들인 크래프트맨쉽의 결과물은 변함없이 우리를 흥분시킵니다. 브릭도 얼마든지 예술의 시작일 수 있으나, 브릭이 예술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 플래시를 차단하지 말라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안 듣는군요. 매번 수동으로 차단을 풀어가며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다만 그 대다수가 대형 커뮤니티 산하의 소모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을 뿐이죠. 아직 짧고 얕은 한국 브릭계의 현실입니다. [본문으로]
  3. 레고 사에서 만들어냈을 리가 없는 부품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밀리터리 분야의 특징이겠죠. [본문으로]
  4. 여담이라 치고, 한국 MOC계는 아직 모더니즘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는 듯합니다.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고 내보이며 보존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죠. 이는 작가와 관객 사이에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울타리를 치게 만듭니다. 관객참여형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죠. 미술계에서는 이런 '작가주의적' 태도가 고루한 것이라며 공격과 극복의 대상이 된 게 벌써 반 세기 남짓이에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면 너무 앞서 나간 걸까요? 이번 행사의 슬로건이 무려 "예술의 시작은 브릭"이길래 언급해봤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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