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비빔툰 (전9권)
지은이: 홍승우
출간: 1, 2권 - 한겨레출판사 | 3~9권 - 문학과지성사
출시: 2000~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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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족만화라고 하면 무턱대고 가족의 소중함, 눈물콧물, 곧죽어도 내 새끼 내 부모같은 것이 강조돼버리기 일쑤입니다. 하물며 육아만화라면 아예 흔치도 않죠. [아기와 나], [요츠바랑] 등 일본 쪽에 몇 가지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뭐는 없겠어요.)
한편 한겨레 신문에 실리는 만화라고 하면 거개가 시사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이쪽은 얼굴도 잘 생기고 잘못이란 결코 없는 데 반해 저쪽은 생긴 것부터가 험상궂거나 야비하고 하는 짓마다 죄 받기 딱 좋은 이분법으로 도배된 것이곤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도 한 번 짚어야 돼요.
[비빔툰]은 이 두 가지 한계를 다 유쾌하게 뛰어넘은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비법은 쓸데 없는 선입견과 전제들을 일절 배제하고 작가와 주변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최대한 밀착했던 실사구시 정신이 아니었나 싶어요. 일상생황을 소재로 한 만화에서 이보다 나은 비법이 또 뭐가 있을까요?
첫 연재가 한겨레 산하의 지역정보지였던 '한겨레 리빙'에 1998년부터, 일간 '한겨레 신문'으로 연재를 옮긴 것이 1999년부터, 단행본 출간은 2000년부터, 연재 완결은 2011년, 마지막 단행본(9권) 출간이 2012년, 그러나 적어도 2013년까지 재출간이 이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 가족만화의 대표작, 모범정답, 표준전과'.
충분히 알려질 만큼 알려지고 팔릴 만큼 팔렸음에도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리뷰를 더하는 이유는 그만큼 오늘 누군가에겐 이 만화의 매 페이지가 더없이 절절할 것이므로, 또 그런 절절함이 앞으로 한동안은 다른 누군가를 통해 되풀이될 것이라서입니다. 결혼, 출산, 육아. 십몇 년 전이나 십몇 년 뒤나 뭐 그리 다르겠어요.
처음 연재될 때만 해도 연인 사이였던 총각과 처녀(정보통과 생활미)는 어느덧 애 둘 딸린 중년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갑니다. 첫째 다운이와 둘째 겨운이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얘들이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아는 집 애들 크는 모습 들여다보듯 여기던 많은 독자들 또한 어느새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버려 함께 웃고 우는 중차대한 체험을 하곤 했죠.
그만큼 너무나 사실적이고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생생한 상황들, 한국이라는 나라와 2000년대라는 시대로부터 한 걸음도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은 친화감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고 키워보면 페이지마다 마르지도 않는 숱한 에피소드에 깊이 공감하고 교감할 수밖에 없죠.
에피소드마다 늘었다 줄었다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간지 연재용 단편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대목에서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초보 엄마 아빠들에게 이 만화는 꽤 훌륭한 교재가 되어주기도 하는데요. 겪어본 모든 분들이 동의하시겠지만 한동안은 책이든 TV든 긴 시간 집중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죠. 특히 엄마들은 '아이를 위한 것 외의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무척 힘들어하곤 합니다.
그때 이 만화책을 보세요. 길어야 한 페이지짜리 만화고 이어지는 내용도 아닙니다. 잠깐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아무 순간에나 들여다보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내용은 구구절절이 내 얘기고 예습이고 복습입니다. 권수도 넉넉하니 작지 않은 위안이 되실 겁니다.
오늘도 어느 드라마에서 재벌2세와 경리 아가씨가 섬을 타든 말든, 다른 만화에서 말단 과장이 어이없게도 회장 직에까지 올라가는 이적이 행해지든 말든, 우리 실제 사는 모습은 이렇습니다.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