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명: 폴크스바겐 T1 삼바 버스 Volkswagen T1 Samba Bus 1
- 회사: 레벨 Revell (독)
- 품번: 07099 [Scalemates DB]
- 출시: 2015년
- 재원: 1:16 | 27.2cm | 223 parts
- 평점: 9 / 10
스타워즈 제품들로 학을 뗐던 브랜드인 레벨의 제품을 다시 맞아들였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자동차, 그것도 1/16 이상의 빅 스케일이라면 이 회사를 외면할 도리가 없더군요. 그밖엔 후지미, 타미야(주로 1:12) 정도. 더구나 2006년 분사 후의 독일 공장 물건에다 해당 모델이 독일 차라면 좀 더 호의적인 시선이어도 좋을 지도.
우선 실차 정보부터:
-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형 버스 (내지 LCV, 경상용차)
- 독일 폭스바겐 사의 (민수용으론) 두 번째 모델 - 그래서 정식 명칭이 'Type 2' 2 3
-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듣는 통칭으론 마이크로 버스, 미니 버스, 히피 버스, 삼바 버스, 불리 등등
- 1950년 최초 생산
- 1세대 모델인 T1부터 6세대인 T6까지 지금도 줄기차게 만들어내는 중
- 특히 T1, 그 중에서도 1962~67년에 생산된 23 윈도우 + 선루프 에디션인 '삼바 버스'의 디자인이 제일 유명
한 바로 그 삼바 버스랍니다.
이런 탓에 프라모델, 다이케스팅으로 미니버스가 있다 싶으면 십중팔구는 T1, 그것도 삼바 버스더군요. 레고 10220 캠퍼밴 버전도 유명하구요.(덕분에 차 이름이 '캠퍼밴'인 줄 아는 분들도...) 프라모델만도 상당히 다양한 제품이 나와있는데(Scalemates에 등록된 풀키트만 무려 70개) 주로 하세가와와 레벨에서 낸 것들입니다.
하세가와는 1997년, 독일 레벨은 2008년부터 각각 자체 1:24 모델을 선보인 뒤 지금까지 수십 가지 버전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독일 레벨의 1:16만 해도 이것을 필두로 패널 밴 버전(2018), 불 들어오고 소리도 나는 테크닉 버전(2019)까지 있습니다. 저는 기본 모델을 빨간색으로 바꿔서 작업했어요. 4
품질
결론부터 말해 반다이 아래, 레벨 스타워즈 위. 하세가와 하록 선장이나 뫼비우스 다크 나이트와 비슷한 수준. 예전에 만져봤던 동사의 스타워즈 제품들(리퍼블릭 건쉽, 임페리얼 셔틀, Eta-2 따위)보다 훨씬 낫다는 데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자국의 명차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이 뒷받침된 걸까도 싶구요.
무엇보다 따로 퍼티질할 필요 없이 아귀 잘 맞는 편이고 패인 곳도 눈에 띄지 않네요. 프로포션은 물론 디테일/재현도도 충분한 듯하구요. 상당량의 크롬 부품과 올컬러 설명서는 중요한 만족 포인트이자 1:24 모델과의 차별화 지점이기도 합니다. 클리어 파츠나 고무 타이어의 상태도 좋고 데칼도 양호. 이만큼만 돼도 품질 걱정에 구입을 꺼릴 일은 없겠어요. 5
그렇다고 반다이와 비교될 만큼이란 건 아닙니다. 몇몇 돌기는 제대로 돋아있지 않고, 있어야 할 구멍이 없기도 하고, 약간이나마 돌아온 지느러미, 설명서 여기저기의 작은 오류들, 한 개 모자란 데칼 등 한다곤 했는데 역시 역부족. 별 수 없죠.
그보다는 난이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초보자용 물건은 아니더군요. 깔끔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토 모델이란 게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편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듯. 제조사가 박스 표면에 손수 매겨놓은 레벨 5 최상등급이 허풍이 아니었어요. 풀도색 필수 + 마스킹 대란, 올접착 필수, 핀바이스며 달군 드라이버며 죄다 동원. 한 마디로 난이도 만점!
도색
색분할 따위 언감생심인 풀도색 필수품이라는 건 이미 말씀드렸구요. 그나마 외장 부품들이 흰색이라 다소 도움은 됩니다. 차라리 크롬과 클리어를 제외하곤 몽땅 화이트로 뽑는 게 나았을 것도 같고... 크롬 부품 많은 건 마음에 들어요.
얼핏 보기엔 흰색과 포인트색(원래는 파랑, 저는 빨강)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내부, 엔진, 하체 등에 다양한 무채색과 메탈릭 계열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작은 부품 하나에 유광 검정, 반광 검정, 진회색, 메탈릭 실버가 다 들어가는 식이죠.
게다가 외장은 당연히 스프레이/에어브러쉬가 필수이고 버튼 등 작은 부분들엔 붓질이 불가결하기 때문에 할 짓 다 해야만 완성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유리창의 고무 패킹이나 방향지시등은 건담 마커나 네임펜을 쓰는 게 훨씬 편하더군요. 붓질로만 끝내보려고 했다가 고무 패킹 포기할 뻔했습니다. 유리창이 무려 23개...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역시 마스킹이었어요. 이 키트는 조촐한 저의 모델링 역사에 3대 지옥으로 기억될 겁니다. ① 밀레니엄 팔콘: 먹선과 데칼 지옥 ② 슬레이브 I: 붓도색 웨더링 지옥 ③ 삼바 버스: 마스킹 지옥
일단 외장부터가 부품마다 두 가지 색으로 나눠줘야 하는데다 그것들을 합치면 하나의 라인으로 말끔하게 이어져야 합니다(저는 끝내 실패). 내부는 더해요. 위의 그 부품 반대쪽을 다시 흰색, 연회색, 중간회색으로 나누게 되어있어서 마스킹 테잎 붙이다 세월 다 갑니다. 코로나 연금상태를 잊기 딱 좋은 물건.
말 나온 김에, 아무래도 웹에 떠도는 회사별 도료 호환표를 꽉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회색들이 그렇더군요. 레벨(도료를 자체 생산합니다)의 청회색은 중간회색, 중성 연회색은 카키 연회색으로 가닿는 식이던데 결과물이 싫지 않아 다행이지만 앞으로 호환표는 참고만 할 생각입니다.
조립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일일이 접착제가 필요한 건 물론이구요. 핀바이스로 뚫어줘야 하는 구멍도 여러 개, 달군 드라이버로 지져줘야 하는 파츠도 몇 개 있습니다. 특히 수많은 유리창이 애를 먹이네요. 일일이 고무 패킹 칠하느라 진땀을 뺀 뒤 일일이 접착하느라 또 손을 떨어야 합니다. 사출이 그렇게까지 정교하진 못한지라 나중에도 안심을 못해요. 다른 작업 하다가, 사진 찍다가 툭 떨어져버리기 일쑤입니다.
반면 데칼은 괜찮네요. 다양한 종류의 번호판을 비롯 이것저것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기도 하고 품질 자체도 양호합니다. 전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사용했어요. 고무로 된 타이어 테두리에도 하얀색 데칼이 추가되는 게 인상 깊더군요.
앞에서 하나 모자라다고 한 데칼은 엔진 구동 벨트에 붙여야 하는 녀석입니다. 양쪽에 하나씩 두 개여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뿐. 옆면에 들어가는 거라 잘 보이지도 않고 위 사진에도 안 나오지만 허전한 마음은 가시지 않네요.
완성
오토 모델 생초보에 라커마저 생초보라 두 달 동안 고충의 연속이었지만 완성하고 나니 과연 사랑이 꽃피는 외모군요. 이만큼 귀엽고 예쁜 자동차가 몇이나 될까요. 최소한 외부의 유광 도색만 제대로 마칠 자신이 있는 애호가라면 꼭 관심을 가져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6
우리나라에선 실차를 구경하기 힘들기 때문에 레고 캠퍼밴(과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 이후에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감이 있는데, 실은 세간의 반응과 달리 저는 레고 버전이 좀 실망스러웠거든요. 두려움을 무릅쓰고 이 제품에 도전했던 이유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채워졌습니다^^.
완성 후에도 남는 아쉬움이 몇 있긴 합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문들이 본체와 아주 딱 맞진 않아요. 여닫아야 하니 퍼티를 바를 수도 없어 웃어넘겨야 되는 부분. 특히 뒷부분은 단차가 심한 편임에도 메웠다간 엔진룸 문이 안 열릴 게 뻔하니 애써 눈길을 돌려야만 하죠. 범퍼를 (접착도 아니고) 끼워만 놓아도 안 열릴 정도니까요.
더 큰 곤란함은 차문의 개폐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앞문과 옆문이 닫힌 상태일 때 밖에서는 열 방법이 없어요. 지붕으로 손이나 막대기를 넣어 안쪽에서 조심스럽게 밀어줘야만 합니다. 반면 트렁크 문은 지지대 부품에 문제가 있어서, 엔진룸은 원래 생긴 게 그래서 열어두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진 속의 아크릴 판은 그런 이유였어요^^;;
그래도 예뻐서 다 용서가 됩니다. 충분한 디테일, 열릴 거 다 열리고 시트와 앞바퀴까지 움직여지는 기믹, 유러피안 버전과 아메리칸 버전 옵션 제공, 넉넉한 데칼, 한몫 단단히 하는 올컬러 설명서 등 최강 난이도를 감수할 만한 사유도 많아요. 전시효과 또한 걸맞게 최강.
힘겨웠던 두 달을 보낸 지 며칠 됐다고 레벨의 다른 1:16 모델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에 기가 막히면서도 옆에 있는 이 아이를 바라보노라면 다시 최면이 발동하네요. 비틀도 있고 팬텀도 있고 포드 T까지 있던데... 일단 1년만 참아봐야죠.
- 이렇게 읽는 게 분명 맞고 광고에서도 이렇게 발음하지만 한국 지사의 공식 명칭조차 '폭스바겐 코리아'니 이번만 빼고 따라갑니다. [본문으로]
- 첫 번째 모델인 Type 1이 바로 통칭 비틀, 그리고 둘 사이의 군수용 모델이 퀴벨바겐과 슈빔바겐. [본문으로]
- 너무 딱딱한 네이밍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3세대인 T3부터는 '트랜스포터'로 개명. [본문으로]
- 어차피 풀도색이 필수이므로 색상 선택은 자유. 다만 차량 중간을 가로지르는 크롬 띠에 붙이게 되어있는 파란 줄 데칼은 포기해야 합니다. 대신 빨간 줄을 힘겹게 그려넣어봤는데 지저분해 보이기만 해서 다시 힘겹게 지웠습니다;; [본문으로]
- 1:24 모델은 이것보다 반값에 크기 18cm, 121개 파츠, 일부만 크롬 부품(특히 옆선은 죄다 데칼), 흑백 설명서 등의 구성이더군요. [본문으로]
- 에어브러쉬 없어요. 몽땅 캔 스프레이로 뿌리느라 키트 가격만큼 돈이 나갔어요ㅜ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