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모델

레벨(Revell) 폭스바겐 T1 삼바 버스 1:16

apparat 2021. 1. 25. 07:12
  • 품명: 폴크스바겐[각주:1] T1 삼바 버스 Volkswagen T1 Samba Bus
  • 회사: 레벨 Revell (독)
  • 품번: 07099 [Scalemates DB]
  • 출시: 2015년
  • 재원: 1:16 | 27.2cm | 223 parts
  • 평점: 9 / 10

스타워즈 제품들로 학을 뗐던 브랜드인 레벨의 제품을 다시 맞아들였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자동차, 그것도 1/16 이상의 빅 스케일이라면 이 회사를 외면할 도리가 없더군요. 그밖엔 후지미, 타미야(주로 1:12) 정도. 더구나 2006년 분사 후의 독일 공장 물건에다 해당 모델이 독일 차라면 좀 더 호의적인 시선이어도 좋을 지도.

 

△ 박스 앞면 [출처: Scalemates]

 

우선 실차 정보부터:

  •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형 버스 (내지 LCV, 경상용차)
  • 독일 폭스바겐 사의 (민수용으론) 두 번째 모델 - 그래서 정식 명칭이 'Type 2'[각주:2] [각주:3]
  •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듣는 통칭으론 마이크로 버스, 미니 버스, 히피 버스, 삼바 버스, 불리 등등
  • 1950년 최초 생산
  • 1세대 모델인 T1부터 6세대인 T6까지 지금도 줄기차게 만들어내는 중
  • 특히 T1, 그 중에서도 1962~67년에 생산된 23 윈도우 + 선루프 에디션인 '삼바 버스'의 디자인이 제일 유명

 

한 바로 그 삼바 버스랍니다.

 

이런 탓에 프라모델, 다이케스팅으로 미니버스가 있다 싶으면 십중팔구는 T1, 그것도 삼바 버스더군요. 레고 10220 캠퍼밴 버전도 유명하구요.(덕분에 차 이름이 '캠퍼밴'인 줄 아는 분들도...) 프라모델만도 상당히 다양한 제품이 나와있는데(Scalemates에 등록된 풀키트만 무려 70개) 주로 하세가와와 레벨에서 낸 것들입니다.

 

하세가와는 1997년, 독일 레벨은 2008년부터 각각 자체 1:24 모델을 선보인 뒤 지금까지 수십 가지 버전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독일 레벨의 1:16만 해도 이것을 필두로 패널 밴 버전(2018), 불 들어오고 소리도 나는 테크닉 버전(2019)까지 있습니다. 저는 기본 모델을 빨간색으로 바꿔서 작업했어요.[각주:4]

 

△ 앞모습 (유러피안 버전)

 

△ 뒷모습 (유러피안 버전)

 

△ 유러피안 버전(좌)과 아메리칸 버전(우). 범퍼 외에 번호판과 방향지시등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범퍼 정도는 접착하지 않고 기분에 따라 교체할 수 있어요. 제 경우 뒷범퍼를 끼우면 엔진룸 문이 잘 안 열리는지라 접착은 아예 단념.

 

품질

 

결론부터 말해 반다이 아래, 레벨 스타워즈 위. 하세가와 하록 선장이나 뫼비우스 다크 나이트와 비슷한 수준. 예전에 만져봤던 동사의 스타워즈 제품들(리퍼블릭 건쉽, 임페리얼 셔틀, Eta-2 따위)보다 훨씬 낫다는 데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자국의 명차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이 뒷받침된 걸까도 싶구요.

 

무엇보다 따로 퍼티질할 필요 없이 아귀 잘 맞는 편이고 패인 곳도 눈에 띄지 않네요. 프로포션은 물론 디테일/재현도도 충분한 듯하구요. 상당량의 크롬 부품과 올컬러 설명서는 중요한 만족 포인트이자 1:24 모델과의 차별화 지점이기도 합니다.[각주:5] 클리어 파츠나 고무 타이어의 상태도 좋고 데칼도 양호. 이만큼만 돼도 품질 걱정에 구입을 꺼릴 일은 없겠어요.

 

그렇다고 반다이와 비교될 만큼이란 건 아닙니다. 몇몇 돌기는 제대로 돋아있지 않고, 있어야 할 구멍이 없기도 하고, 약간이나마 돌아온 지느러미, 설명서 여기저기의 작은 오류들, 한 개 모자란 데칼 등 한다곤 했는데 역시 역부족. 별 수 없죠.

 

그보다는 난이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초보자용 물건은 아니더군요. 깔끔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토 모델이란 게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편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듯. 제조사가 박스 표면에 손수 매겨놓은 레벨 5 최상등급이 허풍이 아니었어요. 풀도색 필수 + 마스킹 대란, 올접착 필수, 핀바이스며 달군 드라이버며 죄다 동원. 한 마디로 난이도 만점! 

 

△ 설명서는 엔진부터 시작합니다. 웹의 실차 이미지와 비교당해도 떨지 않을 준수한 디테일. 거기에 걸맞게 꽤나 까다로운 도색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완성하고 나면 여기저기 가려 잘 안 보입니다ㅜㅜ

 

△ 엔진룸 다음은 하체, 실내, 외장의 순서로 설명서가 이어집니다. 완성하고 나면 이처럼 모든 좌석을 한눈에 볼 수는 없게 되죠.

 

△ 하체 (완성 후). 어지간히 디테일이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좀 허전한 느낌입니다. 앞바퀴의 수동 조향이 가능합니다.(위 사진이 최대한 꺾어놓은 상태.)

 

도색

 

색분할 따위 언감생심인 풀도색 필수품이라는 건 이미 말씀드렸구요. 그나마 외장 부품들이 흰색이라 다소 도움은 됩니다. 차라리 크롬과 클리어를 제외하곤 몽땅 화이트로 뽑는 게 나았을 것도 같고... 크롬 부품 많은 건 마음에 들어요.

 

얼핏 보기엔 흰색과 포인트색(원래는 파랑, 저는 빨강)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내부, 엔진, 하체 등에 다양한 무채색과 메탈릭 계열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작은 부품 하나에 유광 검정, 반광 검정, 진회색, 메탈릭 실버가 다 들어가는 식이죠.

 

게다가 외장은 당연히 스프레이/에어브러쉬가 필수이고 버튼 등 작은 부분들엔 붓질이 불가결하기 때문에 할 짓 다 해야만 완성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유리창의 고무 패킹이나 방향지시등은 건담 마커나 네임펜을 쓰는 게 훨씬 편하더군요. 붓질로만 끝내보려고 했다가 고무 패킹 포기할 뻔했습니다. 유리창이 무려 23개...

 

△ 옆모습 (유러피안 버전). 앞문 x2, 옆문 x2, 트렁크, 엔진룸의 개폐 및 지붕 교체가 가능합니다.

 

△ 윗모습 (유러피안 버전). 실차에선 천 소재인 선루프는 개/폐 상태 선택이 가능합니다. (밑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문들을 열기 위해서라도 접착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역시 마스킹이었어요. 이 키트는 조촐한 저의 모델링 역사에 3대 지옥으로 기억될 겁니다. ① 밀레니엄 팔콘: 먹선과 데칼 지옥 ② 슬레이브 I: 붓도색 웨더링 지옥 ③ 삼바 버스: 마스킹 지옥

 

일단 외장부터가 부품마다 두 가지 색으로 나눠줘야 하는데다 그것들을 합치면 하나의 라인으로 말끔하게 이어져야 합니다(저는 끝내 실패). 내부는 더해요. 위의 그 부품 반대쪽을 다시 흰색, 연회색, 중간회색으로 나누게 되어있어서 마스킹 테잎 붙이다 세월 다 갑니다. 코로나 연금상태를 잊기 딱 좋은 물건.

 

말 나온 김에, 아무래도 웹에 떠도는 회사별 도료 호환표를 꽉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회색들이 그렇더군요. 레벨(도료를 자체 생산합니다)의 청회색은 중간회색, 중성 연회색은 카키 연회색으로 가닿는 식이던데 결과물이 싫지 않아 다행이지만 앞으로 호환표는 참고만 할 생각입니다.

 

△ 뒷쪽 트렁크 문을 연 상태. 예쁜 소품이라도 곁들여있으면 좋을 텐데 독일스럽게 무뚝뚝하니 텅 비어 있군요. 열어둘 때 쓰는 지지대 부품이 있긴 한데 연결부 사출이 불량해서 생략하고 말았습니다.

 

△ 트렁크 밑의 엔진룸 문을 연 상태. 위의 완성 전 사진과 비교해 많이 가려집니다.

 

조립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일일이 접착제가 필요한 건 물론이구요. 핀바이스로 뚫어줘야 하는 구멍도 여러 개, 달군 드라이버로 지져줘야 하는 파츠도 몇 개 있습니다. 특히 수많은 유리창이 애를 먹이네요. 일일이 고무 패킹 칠하느라 진땀을 뺀 뒤 일일이 접착하느라 또 손을 떨어야 합니다. 사출이 그렇게까지 정교하진 못한지라 나중에도 안심을 못해요. 다른 작업 하다가, 사진 찍다가 툭 떨어져버리기 일쑤입니다.

 

반면 데칼은 괜찮네요. 다양한 종류의 번호판을 비롯 이것저것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기도 하고 품질 자체도 양호합니다. 전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사용했어요. 고무로 된 타이어 테두리에도 하얀색 데칼이 추가되는 게 인상 깊더군요.

 

앞에서 하나 모자라다고 한 데칼은 엔진 구동 벨트에 붙여야 하는 녀석입니다. 양쪽에 하나씩 두 개여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뿐. 옆면에 들어가는 거라 잘 보이지도 않고 위 사진에도 안 나오지만 허전한 마음은 가시지 않네요.

 

△ 내부 - 앞쪽. 인테리어도 있을 만한 건 다 있습니다. 도색이 외부보다 오히려 더 번거롭습니다.

 

△ 내부 - 운전석과 계기판 부분. 같은 화이트와 블랙이라도 부분부분 유광과 무광, 고무색까지 달리 하도록 되어있는데 사진은커녕 눈으로 봐도 별로 티가 안 납니다;;

 

△ 내부 - 뒷쪽. 시트 등받이 하나가 가동형입니다.

 

완성

 

오토 모델 생초보에 라커마저 생초보라[각주:6] 두 달 동안 고충의 연속이었지만 완성하고 나니 과연 사랑이 꽃피는 외모군요. 이만큼 귀엽고 예쁜 자동차가 몇이나 될까요. 최소한 외부의 유광 도색만 제대로 마칠 자신이 있는 애호가라면 꼭 관심을 가져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 유러피안 버전

 

우리나라에선 실차를 구경하기 힘들기 때문에 레고 캠퍼밴(과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 이후에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감이 있는데, 실은 세간의 반응과 달리 저는 레고 버전이 좀 실망스러웠거든요. 두려움을 무릅쓰고 이 제품에 도전했던 이유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채워졌습니다^^.

 

△ 레고 10220(좌)과 레벨 1:16(우)의 비교. 크기는 레고가 약 30cm, 레벨이 약 27cm로 엇비슷합니다. (캠핑카냐 승합차냐는 덮어두고) 레고도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 봅니다만 아무래도 T1의 기념비적인 곡선미를 재현하기엔 역부족이 아니었는지... 레고는 어디까지나 레고인 대로 좋은 거지, 본격 스케일 모델과의 재현성 경쟁이란 어불성설이겠죠. 요즘 나오는 수십만원짜리 엑스퍼트/테크닉 제품들도 마찬가지.

 

완성 후에도 남는 아쉬움이 몇 있긴 합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문들이 본체와 아주 딱 맞진 않아요. 여닫아야 하니 퍼티를 바를 수도 없어 웃어넘겨야 되는 부분. 특히 뒷부분은 단차가 심한 편임에도 메웠다간 엔진룸 문이 안 열릴 게 뻔하니 애써 눈길을 돌려야만 하죠. 범퍼를 (접착도 아니고) 끼워만 놓아도 안 열릴 정도니까요.

 

더 큰 곤란함은 차문의 개폐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앞문과 옆문이 닫힌 상태일 때 밖에서는 열 방법이 없어요. 지붕으로 손이나 막대기를 넣어 안쪽에서 조심스럽게 밀어줘야만 합니다. 반면 트렁크 문은 지지대 부품에 문제가 있어서, 엔진룸은 원래 생긴 게 그래서 열어두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진 속의 아크릴 판은 그런 이유였어요^^;;

 

그래도 예뻐서 다 용서가 됩니다. 충분한 디테일, 열릴 거 다 열리고 시트와 앞바퀴까지 움직여지는 기믹, 유러피안 버전과 아메리칸 버전 옵션 제공, 넉넉한 데칼, 한몫 단단히 하는 올컬러 설명서 등 최강 난이도를 감수할 만한 사유도 많아요. 전시효과 또한 걸맞게 최강.

 

힘겨웠던 두 달을 보낸 지 며칠 됐다고 레벨의 다른 1:16 모델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에 기가 막히면서도 옆에 있는 이 아이를 바라보노라면 다시 최면이 발동하네요. 비틀도 있고 팬텀도 있고 포드 T까지 있던데... 일단 1년만 참아봐야죠.

 

△ 아메리칸 버전의 뒷모습

 

△ 아메리칸 버전의 앞모습

 

  1. 이렇게 읽는 게 분명 맞고 광고에서도 이렇게 발음하지만 한국 지사의 공식 명칭조차 '폭스바겐 코리아'니 이번만 빼고 따라갑니다. [본문으로]
  2. 첫 번째 모델인 Type 1이 바로 통칭 비틀, 그리고 둘 사이의 군수용 모델이 퀴벨바겐과 슈빔바겐. [본문으로]
  3. 너무 딱딱한 네이밍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3세대인 T3부터는 '트랜스포터'로 개명. [본문으로]
  4. 어차피 풀도색이 필수이므로 색상 선택은 자유. 다만 차량 중간을 가로지르는 크롬 띠에 붙이게 되어있는 파란 줄 데칼은 포기해야 합니다. 대신 빨간 줄을 힘겹게 그려넣어봤는데 지저분해 보이기만 해서 다시 힘겹게 지웠습니다;; [본문으로]
  5. 1:24 모델은 이것보다 반값에 크기 18cm, 121개 파츠, 일부만 크롬 부품(특히 옆선은 죄다 데칼), 흑백 설명서 등의 구성이더군요. [본문으로]
  6. 에어브러쉬 없어요. 몽땅 캔 스프레이로 뿌리느라 키트 가격만큼 돈이 나갔어요ㅜ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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