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감독: 드니 빌뇌브
배우: 라이언 고슬링, 해리슨 포드, 아나 데 아르마스, 실비아 휙스, 자레드 레토, 로빈 라이트, 데이브 바티스타 외
제작: 콜럼비아 픽쳐스 외 (미)
개봉: 2017년 10월 12일
평가: IMDb 이용자 평점 8.4 | 메타스코어 평점 81 | 로튼 토마토 신선도 88% | 나의 평점 9
(0) 시작하기 전에
훌륭한 영화라 더 많이 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브릭/프라와 관련 없는 영화 감상기를 오랜만에 올립니다. 하지만 이 글때문에 오히려 보려다 마는 분이 계실지도. 어쩔 수 없죠. 인연이 아니라면.
스포일러는 가급적 배제했습니다. 그러나 전작을 미리 봐두는 것 이상의 준비가 별 소용 없는 영화같아요. 다만 공식 발표된 프리퀄 단편 셋은 먼저 봐도 좋고 나중에 봐도 좋을 것 같네요.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찾아보시면 한국어 자막 버전도 있습니다.)
IMDb 이용자 평점은 앞으로 줄곧, 일단 게시 당시 점수를 적어놓고 나중에 간간이 업데이트하는 걸로 할게요.
(1) 단평
35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
새 감독이 맡길 정말 다행이다.
(2) 보셔야 할 분과 보지 마셔야 할 분들
이 영화를 꼭 보셔야 할 분
- 정통 SF의 팬
- 전작을 '재미있게' 보신 분
- 인간복제, 인공지능, 창조주와 피조물같이 골치 아픈 고민을 즐기는 분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시는 편이 나을 분
- SF라기보단 히어로물/액션/스펙터클/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좋아하는 분
- 전작을 아직 안 봤거나 '재미없게' 보신 분
- 사는 것도 힘든데 사서 골치 아픈 거 딱 질색인 분
(3) 전작
일찍이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가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걸작이네 20세기를 대표하는 SF영화네 말은 많지만, 위에서 보듯 일반적인 투표결과는 10점 만점에 8~9 정도에요.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닐 겁니다. 언뜻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헤드]가 연상되기도 하는 너무 심했나?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만듦새를 감안해야 할 거예요.
그냥 오래 전 영화라서가 아니죠.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던 거죠. 시종일관 스크린을 적시는 낯섦, 고독, 소외, 단절, 부유, 불안, 이질감, 음습함의 정서. 그리고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게끔 만들어놓은 스토리.
가벼운 킬링타임용 즐길거리를 제공할 생각 따위 전혀 없는 감독의 이런 태도에는 확실히 어느 정도의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일 겁니다.
이런 걸 감안해야 할 점수일 테고, 아무리 그 앞에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는 물론 고다르의 [알파빌](1965)이며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1972), 나아가 까마득한 1927년의 [메트로폴리스]마저 서식해왔다곤 하지만 35년 전 SF영화가 이 정도라는 건 감복할 일이죠. 이정표가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나타난 속편입니다.
네, 이것은 완벽하게 전작의 속편입니다. 리부트, 평행세계, 스핀오프같은 거 아닙니다. 그래서 전작을 보지 않고는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또한 전작의 훌륭한 속편입니다. 같은 감독이나 심지어 같은 팀이 만든 것도 아니고 세월도 엄청 흘렀는데 이처럼 미려하게 연결된 후속편이라니, 드니 빌뇌브 감독 다시봐야겠습니다. 전작들 열심히 챙겨봐야겠어요. 3
그렇다곤 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속편입니다. 전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전편의 뒤를 이어가는 속편입니다. 그 점이 이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차이는 뚜렷합니다. [에일리언] 1편과 2편의 차이보다 훨씬 더요. 특정한 정서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일로매진했던 전작의 스타일리쉬함 대신 요즘 영화다운 세련미로 한껏 무장하고 있죠. 대중적 친화력이라는 측면에선 +1점쯤 돼보입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만큼은 아니에요. [마션]만큼은 더더욱 아니구요. 여전히 묵직하고, 진지하고, 느리고, 복잡하고, 심오합니다. 더구나 장벽같이 버티고 선 전작의 존재라니, 흥행은... 상이라도 좀 받길 바래야죠.
꼽아줄 건 전작과의 말끔한 이음새 외에도 많습니다. 전작과는 비교할 수도 없거니와 당대 기준으로도 탑 클래스를 달릴 만한 비주얼은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최고라 할 만했고 무엇보다 문제의식의 신선도가 좋았습니다. 4
전작의 문제의식은 당시로선 센세이셔널했겠지만 하도 우려져서 이제는 상식문제가 돼버렸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딛어야 하는데 그걸 해내더군요. 크게 두 줄기로 내놓았던 '다음 문제', 인상 깊었어요.
(4) 그분의 근작
[블레이드 러너](1982)를 떠올리면 거의 함께 소환되곤 하는 것이 그보다 3년 전의 전작 [에일리언]일테죠. 그리고 이쪽 역시 (비록 2~4가 따로 있긴 하지만) 33년만의 프리퀄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같은 해에 그 2탄이 개봉했네요. [에일리언: 커버넌트]죠.
두 작품은 상당히 유사한 소재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레플리컨트/안드로이드, 창조주에 반기를 든 피조물, 나아가 존재의 정체성과 자율성이라는 철학적 물음까지.
그런데 평점 차이가 좀 많이 나죠? ㅎㅎ;; 저의 감상 역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워낙 들쭉날쭉이 심한 분이라서인지?
[2049]가 장성한 둘째라면 그분의 근작은 형님의 노익장 과시... 연세 때문만은 아니겠죠. 불과 2년 전에 [마션]을 잘 봤던 기억이니까요.
[커버넌트]는 확실히 뭇 시리즈물의 수준을 넘지 못했던 듯합니다. 주제의식이 깊어지긴커녕 떡밥만 여전히 둥둥 떠다니고, 속된 B급 호러물처럼 대원들은 어리석게 죽어나가고, 그저 기존 것의 변주만 이어지다 윌 비 백.
결정적으로 주연여배우마저 시고니 위버 급의 카리스마도 샤를리즈 테론같은 매력도 갖추지 못하다보니 남은 거라곤 다른 데서 이미 봤거나 얼마든지 볼 수 있는 CG거리들과 마이클 파스벤더의 분투뿐. 진짜 파스벤더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분, 올해로 장장 팔순이신데 앞으로 에일리언 시리즈를 몇 편 더 이어갈지도 아직 안 정해졌다니 걱정이 앞섭니다.
부디 스타워즈 프리퀄의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할텐데요. 어쩌면 그마저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5) 잡담들
한글 많이 보여요. 전작보다 더 나옵니다. 일본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줄었구요. 20년 불황의 반영일 듯.
숱한 해석이 난무할 영화입니다만 이 해석은 특히 흥미롭네요. 스포일러 왕창이니 주의하시구요.
배우들의 '친SF 성향'도 각별하네요. 한솔로 포드야 말할 것도 없고 데이브 바티스타는 [가오갤]의 드렉스로, K의 상관 로빈 라이트는 [원더 우먼]에서 최강의 여전사 안티오페로, 최종보스 자레드 레토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로, 라틴계 형사의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는 TV 시리즈 [배틀스타 갤럭티카]로 익숙합니다.
다만 한 10년 전부터 SF/액션계를 휘어잡았을 것 같은 레플리컨트 실비아 휙스는 정반대 분위기인 [베스트 오퍼]로 낯을 익혔고 주연인 라이언 고슬링은 SF 비슷한 것도 처음이라네요. 액션과 탭댄싱이라면 낯설지 않겠습니다만.
왠지 돌아가는 분위기가 몇 편 더 이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여지가 굉장히 많아요. 앞으로도 뒤로도 사이사이로도.
고품질이기만 하다면야 얼마든지 환영입니다만 기존의 둘과 견줄 만한 게 쉽게 나와줄지 벌써부터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얼마든 기다려줄 수 있으니 서둘지만 않았으면 합니다.
- 국내개봉 정식명칭은 [에이리언: 커버넌트]지만 결코 에'일'리언을 에'이'리언으로 쓰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빠다코코낫일 게냐. [본문으로]
- [스타 워즈]로 대표되는 스페이스 오페라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는 의미에서입니다. '공상'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허구라는 게 Science Fiction의 원래 의미죠. 반면 스페이스 오페라의 어원이 Space 'Soap Opera'라는 걸 생각하면 같은 범SF 계열이라 해도 둘의 차이는 분명할 거예요. [본문으로]
- 리들리 스콧은 executive producer, 즉 돈만 댔다고 합니다. 반젤리스도 음악에 참여하지 않았구요. 배우로는 해리슨 포드(이번엔 조연) 외에 전작에서 그와 같이 다녔던 라틴계 형사(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가 우정출연하는 게 다입니다. 전작의 여주 레이첼(션 영) 역시 CG 합성영상 등을 통해 잠깐씩 등장할 뿐이에요. [본문으로]
- [가오갤]의 드렉스, 전직 프로레슬러 데이브 바티스타도 비록 단역에 가까운 조연이었지만 나날이 늘어가는 연기력을 보여주네요. 프리퀄 단편에선 더욱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