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모델

이탈레리(Italeri) 부가티 타입 35B 로드스터 1:12

apparat 2026. 5. 18. 02:24

 

두 번째로 손 대보는 오토 모델(배트모빌 텀블러는 제외하구요), 처음으로 접해보는 이탈레리입니다. 5년 전 레벨 삼바 버스로 진땀을 넉넉히 흘린 뒤 차는 한동안 멀리 했건만, 저 아리따운 클래식 레이싱카의 자태를 외면하기란 종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안 그래도 딱 이쯤 생긴 자동차가 1:16 정도로 신규출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부가티로, 게다가 1:12로, 심지어 로드스터마저.

 

△ 박스 앞면  [출처: Italeri 공홈]

 

 

실차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타입 35 전체에 관한 내용입니다):

  • 수퍼카를 넘는 하이퍼카, 부가티의 진정한 전성기를 대표하는 명차
  • 1924~1930년 생산
  • 20~30년대 각종 카레이싱에서 도합 1천번 넘게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전설 그 자체
  • 타입 35B는 35 계열의 마지막 모델로 1927년 첫선을 보인 뒤 총 37대 제작
  • 2262cc 8기통 엔진, 출력 135마력, 최고 속도 190km/h (무려 100년 전에)

 

사정이 이런지라 여러 차례 모형화되었다고는 하나 근래에 나온 것은 드물었고 더구나 1:24 이상은 찾을 수 없었는데, 드디어 2022년 이탈리아의 모형 회사 이탈레리가 일반형(품번 4710)부터 출시를 시작했던 것이죠. 2년 뒤에 나온 본 로드스터 버전(품번 4713)과는 헤드라이트, 스페어 타이어, 윈드 쉴드, 데칼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반형 구하기가 한결 수월하고 로드스터는 보기 어렵습니다. 저도 해외주문으로 두 달 가량 기다려 겨우 구했어요.

 

 

품질

 

키트 자체의 완성도는 상당하더군요. 들어맞지 않거나 휘어져 있는 부분은 별로 없구요. 재현성과 정밀도도 충분하고 부품들의 품질도 좋았습니다. 다만 단차가 눈에 띄는 경우가 많아 사포로 다듬을 일이 잦고, 요철도 접착제 바르기 전에 미리 확인해야 되긴 합니다.

 

PS 외에 크롬/알루미늄 코팅 파츠, 클리어 파츠, 에칭 파츠, 고무 타이어, 각종 나사와 철사와 튜브, 천과 PVC, 데칼 따위가 골고루 들어있고 설명서 본문은 흑백입니다. 크롬/알루미늄 파츠의 코팅도 잘돼있고 에칭이나 데칼에도 문제 없었습니다. 단지 철사 중 한 가지(0.5mm 굵기)의 길이가 모자라게 들어있는 바람에 다이소 0.6mm로 대신했네요.(이 정도 굵기 차이는 별 지장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천과 PVC 파츠입니다. 보닛과 스페어 타이어를 고정하는 스트랩을 만드는 용도로 택일하도록 되어있는데요. 천은 자르면 올이 다 풀리는 바람에 쓰기가 힘들어지고 PVC는 도색조차 안되어 있는데다 이질감이 커서 써볼 생각도 안했네요. 천 가장자리에 목공풀을 먹여 대충 써먹긴 했지만 매뉴얼대로 바지 벨트처럼 묶고 풀기는 많이 힘들어요.(가장자리를 살짝 지지는 방법도 있지만 부디 신중하시길.) 더구나 매뉴얼대로 완성해버리면 한쪽 보닛은 아예 못 열게 됩니다.(이건 자석으로 개조할 수도 있겠습니다.) 작업시 스트랩만큼은 각자도생하셔야 할 듯.

 

설명서는 대체로 괜찮지만 100% 믿을 순 없는 수준이구요. 간간이 부품 번호를 잘못 매겨놨다든가, 대체 파츠를 누락했다든가, 도색 지시가 (아무리 생각해도) 틀렸다든가 하는 정도의 애로사항은 있습니다. 작업 전에 실차든 작례든 검색을 좀 해보시길 권합니다.

 

 

도색

 

△ 외장 부품들 - 거의 프렌치 블루 유광 도색

 

외장은 죄다 '프렌치 블루'(타미야 기준)입니다. 다만 보닛 내부는 실버, 본체 내부는 알루미늄 컬러가 추천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내외부가 몽땅 하늘색이라 장난감처럼 보일 거예요. 원부품의 색상 일치도는 매우 높지만 유광이 아니므로 어차피 전체 도색이 불가피합니다. 참고로 도색 전 결합이 가능한 부분은 하체 밑판과 그 양옆 정도가 고작이에요.

 

나머지 부품들도 크롬과 알루미늄 파츠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색이 필요할 듯합니다. 원부품은 그레이인데 실버로 칠하라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거든요. 무광이어야 되는 것도 많고 스틸, 건 메탈, 브라스, 코퍼, 우드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참고로 미스터 하비의 '스틸' 색상은 일반적인 '건 메탈'과, 미스터 하비의 '실버'와 타미야의 '글로스 알루미늄'은 서로간에 분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해서 저는 결국 이들의 색 구분을 포기했으니ㅜㅜ 감안하시길.

 

크롬과 알루미늄 파츠는 그대로 썼습니다. 게이트 자국의 경우 요즘 마커들이 잘 나와서 쉬워졌어요. 다만 코팅을 벗겨내고 다른 색을 입혀야 하는 건 몇 개 있습니다. 락스로는 안되고 트래펑이 잘 듣더군요. 에칭 파츠 몇 개도 도색이 필요하니 메탈 프라이머도 필요하겠구요.(아주 작긴 합니다.)

 

전반적인 도색 난이도는 딱 보통의 오토 모델만큼일 듯합니다. 마스킹 테잎이 한없이 소모되거나 하지는 않아요.

 

 

조립

 

열심히 사포질하고 공들여 도색한 뒤 조립을 시작하면서부터가 진짜 가시밭길입니다. 예전의 삼바 버스도 레벨 자체 기준 최상급의 난이도가 매겨져 있었지만 그쪽은 오히려 도색이 까다로웠던 것 같고 이쪽은 조립이 더 험난하네요. 삼바 버스가 레벨 5라면 이쪽은 6~7은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플라스틱 외에 나사, 철사, 튜브, 에칭, 천/PVC 등 다양한 재료가 동원된다는 점. 늘이고 조이고 끊고 지지고 오리고 꿰고 펴고 구부리고... 웬만큼 알려진 프라모델 제작기법 중에 동원되지 않는 걸 떠올리기가 어렵더군요. 공구 역시 소형 드라이버, 핀 바이스, 롱 노즈, 일반용 니퍼 등 골고루 깔아놔야 하구요. 대신 본체 주요 부분의 결합에 주로 나사가 동원되기 때문에 튼튼하게 조립되긴 합니다.

 

순접도 자주 필요한데 특히 크롬 코팅에 에칭 파츠를 붙여야 하는 경우가 있어 진땀 흘립니다. 요즘은 순접도 전용 제거제가 있어 부담이 덜하지만 크롬 코팅면에 쓸 땐 극히 조심스럽거든요. 계기판의 경우 데칼을 먼저 붙인 뒤 클리어 파츠를 덧붙여야 해서 전용 접착제가 따로 요구되기도 하구요.(보통의 플라스틱 접착제를 바르면 데칼의 프린팅이 순식간에 녹아버립니다.) 어떤 분은 UV 레진으로 클리어 파츠를 대신하기도 하더군요.

 

△ 엔진부. 본체에 장착한 후 추가돼야 할 부품이 많이 남았다.

 

△ 운전석/계기판. 갖가지 소재를 동원해 최대한 디테일을 살렸다. 대신 만들기는 그만큼 힘들지만. 바닥은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이지만 실차 자체가 이렇게 생겼다.

 

과정이 어려운 만큼 재현성과 만족도는 큽니다. 적어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석만큼은 실차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고 있는 것 같구요. 워낙 명차다 보니 웹에서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꽤 비슷합니다. 많이 비슷합니다. 부품 색깔이야 다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지만 형태만큼은 높은 재현도를 보이고 있어 땀 흘려 만든 후의 뿌듯함이 있습니다.

 

△ 섀시까지 완성 (윗면). 다 만들어도 엔진부는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지만 뒤의 연료통은 완전히 가려진다.

 

△ 섀시까지 완성 (아랫면). 다 만들면 가려져서 히트 싱크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완성

 

 

부가티 특유의 말굽형 그릴이 처음으로 적용된 게 바로 타입 35였다죠. 100년 전엔 그릴을 철사로 일일이 꿰어서 틀에 고정시켰던 모양인데, 그 과정을 직접 체험하시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난이도, 재현도, 만족도 죄다 피크치로 업, 업.

 

클래식카 특유의 크랭크 핸들이 보이는데요. 원래대로 잘 만들면 빙글빙글 돌릴 수 있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좀 어렵더군요. 가동이 가능한 몇 안되는 부분인데 아쉽습니다. 번호판 정도는 몇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도록 데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데칼만큼은 일반형이 더 화려하고 반대로 차량 구조는 로드스터 버전이 더 다채롭습니다.

 

△ 좌측면. 스페어 타이어야말로 로드스터 버전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 작업량은 그만큼 더 많아지지만.

 

△ 우측면. 보닛 스트랩을 매뉴얼대로 고정시키면 이쪽 보닛을 못 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대충 걸쳐두는 것으로 타협.

 

△ 후면. 방향지시등은 본 모델에서 레드와 오렌지 컬러가 사용되는 유일한 부분이다.

 

저작권 때문에 퍼오긴 힘들지만 구글에서 'bugatti 35 engine' 정도로만 이미지 검색을 해봐도 많은 결과물이 쏟아집니다.(상태 좋은 실차는 수십억도 한다던데...) 아래의 완성 후 엔진부 사진과 구도까지 거의 비슷한 것도 많은데요. 비교해보니 이 정도면 만족스럽네요.

 

다만 위에서 언급했듯 개별 부품들의 색깔은 왔다갔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저는 일단 매뉴얼을 최대한 따르되 몇몇 부분만 다르게 해봤습니다. 단, 황동선만큼은 신경을 좀 써야겠더군요. 원래 동파이프인 걸 가느다란 철사로 재현하려니 여차하면 구불구불해지기 쉬운데 사실은 반듯해야 되는 거죠.

 

△ 엔진부 우측면.

 

△ 엔진부 좌측면.

 

 

이 모델도 기믹이 하나 있긴 합니다. 앞바퀴를 좌우로 돌리면 핸들(스티어링 휠)이 따라서 돌아가는 건데요. 조그마한 플라스틱 웜 기어 하나로 동력이 전달되는 탓에 별로 신통치가 못합니다. 자칫 힘 세게 줬다간 어디 한 군데 부러지든 떨어지든 사고 나기 딱 좋겠어요. 반대로 핸들을 돌려서 앞바퀴 조향을 해볼 생각은 하지도 마시구요.

 

그 외엔 문도 지붕도 없는 레이싱카인지라 보닛 열어서 엔진 구경하는 게 전부입니다. 스페어 타이어는 스트랩을 풀지 않고 옆으로 살살 밀어서도 빼놓을 수 있지만(그래야 이쪽 보닛을 열 수 있습니다) 보닛 스트랩은 뭘 어떻게 해도 보닛 개방을 어렵게 만드는 데다 재질도 허접하기 때문에 걸쳐만 놨습니다. 누가 디테일업 파츠 좀 출시해주면 좋겠어요.

 

 

저의 경우 하루 3시간 기준으로 만 6주 가량이 걸렸지만 개인적 편차야 얼마든지 있겠습니다. 작업 난이도는 접해본 여러 후기가 한결같이 최상급, 내가 만들어본 중 제일 어려움 등급을 매기더군요. 챗GPT와 제미나이 역시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적어도 오토 모델을 한두 개는 만들어본 경험자에 한해 추천할 만한 물건임이 분명합니다. 대신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성취감과 완성 후의 뿌듯함 또한 확실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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